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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모델 퇴출 나선 佛, 젊은 여성 20명 중 1명 거식증 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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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모델 퇴출 나선 佛, 젊은 여성 20명 중 1명 거식증 앓아

입력
2015.03.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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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거식증 사망 잇달아, 2006년 우루과이 자매 숨져 충격

佛 보건법 개정안 마련, 너무 마른 모델 고용하는 업체·업주… 최대 9000만원 벌금-징역 6개월

법 통과 땐 미란다 커도 런웨이 못 서, 일부선 노동법 차별금지 위반 시각

전통의 패션 강국 프랑스가 패션쇼 런웨이와 광고에서 지나치게 마른 여성을 퇴출하기로 했다. 프랑스 집권 사회당 소속 올리비에 베랑 의원이 이달 17일 말라깽이 패션 모델을 고용하는 업체나 업주에 최대 7만5,000유로(약 9,024만원)의 벌금 또는 징역 6개월형을 선고하는 내용의 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 법안에 따르면 극도로 마른 신체를 미화하는 내용의 웹사이트나 판촉물 등에도 벌금을 부과한다.

마리솔 투렌 프랑스 보건장관도 현지 BFM TV에 출연 “젊은 여성들의 미적 우상인 패션 모델들에게 음식을 잘 먹고 건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정안을 반겼다.

프랑스 의회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모델들은 패션쇼나 광고 모델에 캐스팅되기 위해 신체질량지수(BMIㆍ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18 이상임을 입증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BMI 18.5 이하 여성을 저체중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프랑스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BMI 18은 키 175㎝에 55㎏ 정도의 체격을 뜻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유명 모델인 미란다 커나 칼리 클로스, 알레산드라 앰브로시오 등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패션쇼 런웨이에 서지 못한다.

프랑스 모델 이자벨 카로의 모습이 담긴 '거식증 반대' 캠페인 옥외 광고물이 지난 200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길거리에 부착돼 있다. 밀라노=AFP 연합뉴스
프랑스 모델 이자벨 카로의 모습이 담긴 '거식증 반대' 캠페인 옥외 광고물이 지난 200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길거리에 부착돼 있다. 밀라노=AFP 연합뉴스

프랑스, 거식증 여성 비율 최고 수준

프랑스에서 거식증에 대한 경각심은 2010년 11월 자국 모델 이자벨 카로가 영양실조로 숨지며 확산됐다. 얼굴뼈와 등뼈의 형태가 다 드러날 정도의 수척한 모습으로 2007년 ‘거식증 반대’ 캠페인 광고에 등장했던 그는 13살부터 거식증에 시달렸다. 광고 촬영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27㎏. 카로는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수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결국 28세에 세상과 작별했다.

프랑스의 거식증 여성 인구는 유럽 국가 가운데 단연 최고다.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가 2011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유럽 내 주요 16개 국가 중 영국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15세 이상 거식증 여성의 비율은 1%대에 머물렀다. 반면 프랑스는 3.66%(약 4만명)에 달하는데, 특히 15~24세의 젊은 여성들 중 거식증을 앓는 인구는 5.14%를 기록했다. 프랑스 전체 여성의 평균 BMI 또한 23.3으로 유럽 16개 국가 중 가장 낮아 평균치(24.69)를 밑돌았다.

이스라엘 등은 이미 거식증 대응 나서

유럽 각국에서 적정 체중 이하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해야 한다는 캠페인은 지난 2006년부터 대대적으로 확산됐다. 카로처럼 한 우루과이 모델 자매가 2006, 2007년 잇따라 거식증에 의한 영양실조로 숨져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것이 그 계기다. 루이젤 라모스(당시 22)는 2006년 8월 사망하기 전 3개월간 상추와 다이어트 콜라만을 먹다 패션쇼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언니의 죽음에도 꿈을 접지 않았던 동생 엘리아나(당시 18) 역시 6개월 만에 영양실조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루이젤 사망 한 달 후, 스페인 마드리드 시의회는 건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자국의 ‘파사렐라 시벨레스’ 패션 박람회에 참가하는 모델은 최소 BMI 18이 돼야 한다는 제한을 뒀다.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모델이었던 에스터 카냐다스는 BMI 14의 체격을 가져 이 패션쇼에 출연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도 그 해 지나치게 마른 모델과 16세 미만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하고, 패션쇼 출연 모델이 거식증 등 섭식장애를 앓지 않는다는 건강증명서를 제시하도록 했다. 죠반나 멜란드리 당시 청소년부 장관은 “마른 모델과 병약한 모델 사이에는 분명 경계가 있다”며 “이번 선언이 이 경계를 인식하고 모델들이 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의 테사 조웰 당시 문화부 장관도 런던패션위크 운영진에 “막대기처럼 마른 모델”의 출연을 금지시키라고 요구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07년에도 이어졌다. 독일 정부와 민간은 공동으로 ‘마른 몸매에 대한 광기에 대항하라’는 구호를 내건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과 관련된 모임에 참가한 우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은 “빼빼 마른 몸매를 가진 모델이 패션쇼와 광고 모델에 나서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며 운동에 앞장섰다. 독일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1~17세 청소년의 22%가 식습관 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특히 17세 소녀 30%가 과도한 마른 몸매 추구로 잘못된 식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의회는 2013년 1월 한 발 더 나아가 처음으로 너무 마른 모델을 규제하는 엄격한 법을 마련했다. 깡마른 모델이 패션쇼와 광고에 등장하거나, 사진 속 모델의 몸매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더 마르게 조작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스라엘 역시 자국 모델 한 명이 거식증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서 사망한 것이 법안 마련의 계기였다. 숨진 모델의 마지막 순간을 도운 패션 사진작가 아디 바르칸은 1997년 모델이 되고 싶다며 자신을 찾아온 깡마른 15살 소녀를 설득해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이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바르칸은 “내가 어린 소녀를 도왔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 ‘나를 죽음에서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 여성들의 전화를 174통이나 받았다”고 말했다.

패션 잡지 엘르 프랑스가 2012년 2월호 표지에 살집이 있는 '빅 사이즈' 모델 타라 린을 모델로 실었다. 엘르 캡처
패션 잡지 엘르 프랑스가 2012년 2월호 표지에 살집이 있는 '빅 사이즈' 모델 타라 린을 모델로 실었다. 엘르 캡처

마른 여성에 대한 오해 초래한다 반발도

하지만 깡마른 모델을 규제하는 데 대한 반발은 만만찮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의 마른모델 추방법 추진과 관련 패션업계와 일부 의원들이 “이 법안은 프랑스 노동법이 규정한 ‘직장 내 차별금지’ 조항을 위반한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마른 사람의 패션업계 취직을 원천적으로 막는 불합리한 법안이며, 일할 권리를 제한하는 불평등한 규제라는 것이다.

2006년 유럽에서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질 때에도 모델 수백명은 대규모 항의에 나섰었다. 이들은 “우리는 마른 것이지 아픈 것은 아니다”라며 “나는 말랐지만 보다시피 매우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마드리드 패션쇼에 참가한 모델 사라 드 안토니오는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더 완벽한 여성상을 조장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만 만드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파리의상조합협회 회장인 디디에 그랑박도 AFP 통신에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자유 의지에 따라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BMI라는 신체 지수 하나로 거식증을 규정짓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영국의 매릴린 글렌빌 여성 영양학 박사는 “BMI는 신체질량을 재는 완벽한 수단은 아니다”라며 “다양한 신체 검사를 통해 해당 모델이 건강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처럼 규제를 통해 패션 산업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적절한 교육과 인식 개선 등을 통해 업계의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보그를 포함한 주요 패션 잡지가 살집이 있는 ‘빅 사이즈 모델’ 을 기용해 여성의 체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카로처럼 13살 때부터 수년간 거식증에 시달려온 저널리스트 해들리 프리만은 19일 가디언을 통해 “몇몇 사람들은 모델처럼 마르고 예쁘고 싶어 거식증에 걸렸냐고 묻지만 원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며 “섭식 장애로 고통 받는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싶다면 그들이 왜 불행한 삶을 택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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