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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레전드를 기억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입력
2015.03.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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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스포츠 산업화 속 스포츠와 디자인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 경기라는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내놓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해집니다. 총 10회에 걸친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기획을 통해 한국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높인 사례를 조명합니다.

2004년 개봉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꼴찌 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이범수 분)은 어느 날 어머니(김수미 분)의 서랍 속 입장권 뭉치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머금었다. 자신의 경기를 절대 보지 않으리라 생각한 채 온갖 허풍을 떨어왔던 감사용은 엄마의 입장권을 발견한 그 날부터 피땀 어린 훈련을 거듭해 끝에는 OB 간판투수 박철순을 상대로 인생 최고의 피칭을 펼친다.

어머니에게 입장권은 아들의 역사였다. 경기 입장권을 고이 모아 놓은 이유는 아들의 프로 데뷔 첫해 활약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가장 형편없는 팀, 그 안에서도 가장 형편 없는 투수일지라도 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이 장면처럼 프로야구 출범 원년(1982년)부터 선수의 가족은 물론 다수의 스포츠 팬들은 자신이 본 경기를 추억하기 위한 수단으로 '입장권 수집'을 즐겨왔다. 예매 시스템 발달로 직접 출력한 입장권이나 모바일 입장권으로도 입장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종이 티켓'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이처럼 그 날의 경기를 추억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스틸컷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스틸컷

● 레전드를 위한, 아주 특별한 입장권

‘스포츠왕국’미국에서 입장권은 일찌감치부터 레전드 예우의 수단이었다.

1977년 열린 브라질 '축구 황제' 펠레의 은퇴경기 티켓이 대표적이다. 1956년 프로 데뷔 후 1974년까지 약 20년 동안 산토스 FC(브라질)에서 뛴 후 1975년 뉴욕 코스모스(미국)로 이적해 1977년 은퇴한 이날의 입장권은 아주 특별했다. 코스모스 구단은 산토스와 코스모스의 유니폼을 입고 뛴 펠레의 사인과 사진들을 입장권에 담아 떠나는 레전드를 예우했다.

2014년만 해도 야구, 축구, 아이스하키 등 종목마다 레전드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입장권 디자인'을 택한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5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경기가 열린 조 루이스 아레나에서도 특별한 입장권을 제작했다. 1989년 레드윙스에서 데뷔한 후 25년간 한 팀에서 활약한 '원 클럽맨' 니클라스 리드스트롬(스웨덴)의 은퇴 행사에 맞춰 입장권에 그의 얼굴을 담은 것. 그는 레드윙스에서 뛴 25년간 4차례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NHL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았다.

1977년 펠레(브라질)의 은퇴경기 입장권 과 2014년 니클라스 리드스트롬(스웨덴)의 NHL은퇴경기 입장권. 출처=이베이
1977년 펠레(브라질)의 은퇴경기 입장권 과 2014년 니클라스 리드스트롬(스웨덴)의 NHL은퇴경기 입장권. 출처=이베이
구단의 역사와 레전드들의 기록을 담은 2014년 뉴욕 양키스의 입장권. 출처=이베이
구단의 역사와 레전드들의 기록을 담은 2014년 뉴욕 양키스의 입장권. 출처=이베이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는 지난해 입장 티켓에 구단의 우승 역사와 레전드들의 활약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까지 기록한 총 27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 기록부터 1987년 8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한 돈 매팅리 현 LA 다저스 감독, 1996년부터 2010년까지 포스트 시즌에서만 19승을 세운 앤디 페티트, 1996년부터 2013년까지 652세이브를 기록한 마리아노 리베라 등의 얼굴을 담았다.

● K리그의 의미 있는 시도… 야구는?

국내 팬들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온 입장권도 있다. 2013년 10월 미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벤쿠버 화이트캡스(캐나다)에서 만든 '이영표 은퇴 경기 입장권'이다.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은 당시 자신의 SNS에 "마지막 경기 입장권을 받았습니다"라며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은퇴 경기 입장권을 소개했다.

2013년 11월 미 프로축구(MLS) 벤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제작한 이영표 은퇴경기 티켓. 이영표 트위터
2013년 11월 미 프로축구(MLS) 벤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제작한 이영표 은퇴경기 티켓. 이영표 트위터

이영표와 밴쿠버 구단의 인연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밴쿠버는 2002 한일월드컵부터 2010 남아공월드컵까지 세 차례 월드컵을 치르고 현역에서 물러나는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스페셜 입장권'을 제작해 국내 팬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처럼 의미 있는 시도들은 점차 국내에도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K리그 전북 현대는 지난해 7월 홈 경기 입장권에 약 18년 간의 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베테랑 골키퍼 최은성의 모습을 담았다. 1997년 대전시티즌의 창단 멤버로 K리그에 데뷔해 18시즌 중 15시즌을 대전에서 뛴 최은성이지만, 전북 구단 측은 "최은성은 K리그의 레전드"라며 단 하루만을 위한 입장권을 제작했다.

디자인 또한 특별했다. 구단이 상징색인 녹색과 경의를 표하기 위한 황금색을 바탕으로 한 입장권에는 통산 출전경기 숫자인 '532' 등에 새긴 최은성의 모습과 함께 'adieu! 최은성!'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이 같은 구단의 배려에 대전에서 함께 활약했던 김은중AFC 투비즈(벨기에) 코치는 "내가 다 고마웠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국내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야구의 움직임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역 스타플레이어의 얼굴을 새겨 넣는 등의 시도는 있었지만, 1982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레전드를 기억하기 위한 입장권 제작은 없었다.

전북현대 축구단은 지난해 7월 20일 18년의 프로생활을 마감한 최은성(43)을 위해 은퇴기념 입장권을 제작했다. 입장권에는 프로통산 532경기 출장을 뜻하는 '532'가 새겨진 등번호 유니폼과 함께 'adieu! 최은성!'이 적혔다. 전북 제공
전북현대 축구단은 지난해 7월 20일 18년의 프로생활을 마감한 최은성(43)을 위해 은퇴기념 입장권을 제작했다. 입장권에는 프로통산 532경기 출장을 뜻하는 '532'가 새겨진 등번호 유니폼과 함께 'adieu! 최은성!'이 적혔다. 전북 제공

● "입장권은 수집 가치 충분한 사료(史料)"

FC서울은 지난 2월 올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차두리(35)의 얼굴을 담은 티켓북을 제작했다. 구단 측은 "선수 인생에서 마지막 시즌을 치르는 차두리의 사진을 담아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켓이 아닌 영구적 소장 가치가 있는 기념품을 만들자는 의도에서 기획했다"고 전했다.

좌석별로 5만원~15만원에 이르는 티켓북에 대한 축구팬들의 반응은 호평일색이었다. 서울의 홈 개막전이 열린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김종혁(33)씨는 "지금까지 한국 축구사에 차두리가 남긴 굵직한 업적에 걸맞은 예우"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팬 역시 "훗날엔 소장 가치가 있는 사료(史料)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차두리의 얼굴을 담아 제작한 FC서울의 티켓북. 김형준기자
이번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차두리의 얼굴을 담아 제작한 FC서울의 티켓북. 김형준기자

축구 사료 수집가 이재형 베스트일레븐 이사 역시 팬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구단들이 공 들여 디자인 한 이 같은 티켓들은 몇 십 년 뒤 굉장히 큰 소장 가치를 지닐 것"이라며 "당장은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스토리를 담은 티켓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형 이사는 이어 "과거엔 대한축구협회에서도 레버쿠젠 초청 경기 입장권에 차범근의 얼굴을 담는 등 특별한 디자인의 입장권을 제작했지만, 지금은 모든 티켓이 획일화 돼 아쉽다"고 전하며 "입장권에 의미를 더하면 경기가 더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토록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최주호 인턴기자 (서강대 정치외교 3)

그래픽=백종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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