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저금리 이탈 자금이 주식으로
불황 증권계 "절호의 기회"
위탁매매 수수료 위주에서 탈피
자산관리 해 주며 수익 창출
대기업 임원 출신인 강모(70)씨는 지난해 말 삼성증권을 방문해 종합자산관리서비스(UMA)에 가입했다. 노후자금으로 마련해둔 30억원을 맡기자 담당 프라이빗뱅커(PB)는 국내주식과 해외주식, 채권 등에 고루 분산해 투자했다. 강씨가 가입 당시 제시한 목표수익률 10%에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여. PB는 곧바로 중국펀드에 추가로 가입하면서 투자비중을 조절해 수익률을 15%로 끌어올렸다. 불과 3개월도 안 돼서 4억5,000만원 가량 수익을 낸 것이다. 이렇게 1년간 관리해주는 대가로 강씨가 삼성증권에 내는 수수료는 자산의 1.5%(최대 4,500만원). 강씨는 25일 “과거에는 증권사들이 복잡한 투자상품을 설명해주고 알아서 가입하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맡기면 알아서 수익률을 관리해주니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과거에 증권사들은 고객자산을 주식에 투자하는 위탁매매 수수료로 수익을 냈다. 매매 횟수당 수수료가 매겨지는 탓에 잦은 매매가 이뤄졌고, 정작 수익률은 뒷전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온라인 주식거래가 활성화되고 증시침체가 겹치면서 증권사들의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저금리 시대에 은행 예ㆍ적금에서 이탈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불황에 시달리던 증권업계가 확 바뀌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공급자 위주의 마인드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고객들에게 단 0.01%의 수익이라도 더 안기는 증권사가 승자가 될 거라는 인식으로 재무장하고 있다. 주식시장에 자금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증권사들의 고객자산 수익률 대전이 시작된 셈이다.
가장 선봉에 선 곳은 삼성증권이다. 윤용암 사장은 이달 초 “고객 수익률을 위해 모든 걸 다 바꾸겠다”고 올해 영업목표를 발표했다. 즉각 실행전략이 도입됐다. 고객자산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고객성향뿐 아니라 투자목적, 기간,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본사 전문인력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고 이를 일선 PB가 관리하는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도입했다. 또 해당 PB의 인사평가에 PB가 관리하는 고객자산 수익률을 최대 45%까지 반영하기로 했다.
NH투자증권도 수익률 대전에 적극 뛰어들 태세다. 올해부터 개인고객을 위한 자산관리서비스(WM 2.0)를 도입해 기관투자자에게만 줬던 시장정보를 개인고객에게 제공하고, 주기적으로 수익률을 체크해 자산을 배분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 직원평가에 고객수익률을 반영하고, 고액자산가 고객에 한해 한 명의 PB가 아닌 PB팀을 꾸려 자산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마련하기로 했다. KDB대우증권도 올해 ‘독보적 PB하우스’ 라는 경영목표를 내세우고 일선 PB역량 강화에 주력한다. 올해부터 선발된 신입 PB들은 6개월간 집중 금융교육을 받고 현장에 배치되고 일선 PB들도 각종 교육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고객자산 수익률 제고로 이미 톡톡한 효과를 거둔 증권사들도 있다. PB평가에 고객자산 수익률을 2012년부터 반영해 업계 최초로 도입한 신한금융투자는 2012년 말 22조4,000억원이었던 금융상품 판매잔고가 지난달 말 기준 46조3,000억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고, 고객이 맡긴 총자산 규모도 52조4,000억원(2012년 말)에서 83조6,000억원으로 훌쩍 늘어났다. 올해부터는 기존 고객총자산 수익률 평가뿐 아니라 펀드나 ELS 등 금융상품 수익률만 따로 분리해 직원을 평가하는 ‘고객수익률 평가제도 3.0’을 도입한다. 최근 펀드나 ELS 가입자 수가 늘어나면서 금융상품 수익률만 별도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7월부터 직원평가에 고객자산 수익률을 반영하고 있는 미래에셋증권도 최근 일선 지점에서 직접 운용하는 고객자산관리상품인 랩어카운트에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오는 등 고객 반응이 좋다. 이 상품은 고객이 3,000만원 이상 자산을 맡기면 분기마다 재무상태와 수익률을 확인해 투자상품과 투자비중 등을 변경해 수익률을 관리해준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증권사들이 위탁매매 수수료에 의존했던 수익구조는 장기적으로 고객 자산증식에는 도움이 안됐다”며 “앞으로는 고객자산을 불려주면서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받는 수익구조인 자산관리 수수료 수익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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