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 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늘 마음이 저리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병원에 가는데 그때마다 물으신다. “오늘, 무슨 날이냐?” 1년이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시다 보니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는 매양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으시기 시작한다. 할머니에게는 색다를 것 없는 어제와 오늘을 기억하고 사는 것보다 다채로웠던 옛날을 회상하는 게 훨씬 더 즐거울 것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는 할머니의 방식은 매번 다르다. “얘한테 치킨을 시켜주면 닭다리를 양손에 들고 그걸 얼마나 야무지게 먹었는지 몰라. 한 사람당 닭다리를 두 개씩 먹이려고 두 마리를 시켰다니까, 글쎄.” 최근의 기억이 흐려지는 만큼 옛날 기억은 더욱 선명해지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가만히 잡고 있었다. 이 손으로 내 작은 손에 닭다리를 쥐여주셨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부터 엄마가 음식 장만에 한창이었다. “엄마 보러 가자.” 엄마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 콧마루가 찡했다. 외할머니가 엄마의 엄마라는 당연한 사실이 그 순간 더욱 생생했다. 엄마의 엄마를 보러 가는 길, 엄마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다. 엄마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이 손이 더 앙상해지기 전에, 엄마가 옛날이야기에 익숙해지기 전에 더 많은 기억을 함께 쌓아가야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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