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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취사 선택적 소통

입력
2015.03.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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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서 ‘정치참여 앱’을 만들고 있다. 티저 광고를 통해 알았다. SNS 계정, 혹은 당원 인증을 거치면 이용할 수 있는 앱에 붙일 이름을 공모하는 광고다. 광고는 최신 유행어를 사용하고 B급 코드를 차용했다. ‘젊은이들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당 대표가 직접 광고에 출연한 점, 앱의 이름을 공모하는 점은 여당이 소통에 대해 의지가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조금 삐딱하게 보게 된다. 소통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만’ 형성하려는 것은 아닐까? 정치참여 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될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 앱 이용자들이 생활 속 불평을 말하고, 당직자들이 답변해주고, 그런 소통에서 길어 올린 아이디어 중 일부를 법안에 반영하는 방식을 예상한다. 그 역시 의미가 있다.

다만 온라인에 쏟아지는 이야기에 형식적인 답변을 한 뒤 현실세계에는 영향력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취사 선택적 소통’을 우려한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유족들이 단식을 감행하며 절박하게 요구한 세월호 참사 정밀 조사와 안전 법안 강화 등에 미진한 반응을 보였다. 쌍용차 해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고공 농성 노동자들의 문제 제기를 외면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못들은 척 한 뒤 다른 부분에서만 소통을 강조하며 이미지 관리하는 것은 모순돼 보인다.

우리사회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다. ‘소통’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정작 일상에서는 적확히 말할 줄도, 성의껏 들을 줄도 모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은근히 눈치 주는 화법을 조선 양반들이 좋아했다고 하나,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소통 방법이 요구된다고 믿는다.

상황이 불편해질까 봐, 찍힐까 봐, 예의 없어 보일까 봐 빙빙 돌려 말하는 의사소통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유독 그런 걸 못 참는 성격이다. 정확히 얘기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것. 연애 상대가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서 그래?”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아무 말 없이 화난 기운을 내뿜으며 눈치 주는 것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터놓고 솔직히 말해보라고 해서 미팅이나 회의 때 직언 했다가 싸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아무래도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사육신에 속했을 팔자다.

한국사회에는 얼굴 보고 직언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온라인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좀 더 터놓고 얘기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있는 ‘청와대 신문고’를 활용한 시민들의 쓴 소리도 제대로 가 닿지 않는 현 상황은 의문을 낳는다. 기술과 매체만 혁신한다고 소통의 질이 나아질까? 한국사회의 소통의 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최선을 다해 귀담아 듣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통’이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말만 무성하고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부질없다. 한국에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쌓여있다. 청년실업, 저출산, 주거ㆍ고용 불안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불편한 상황을 대면할 각오와 곤란한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판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기를 기대한다(청년들을 몽땅 중동에 보내는 게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쥐고 있는 정부, 의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조정을 시도하며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불편하다고 가벼운 이야기만 반긴 뒤, 소통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지 않기를. 그런데 어쩐지 그럴 것 같아….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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