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면...
'그림자 연극'이 시작된다
자전거가 줄지어 한강변을 달린다. 도로 위를 스치며 그림자도 쉴새 없이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가 그림자를 따라 달리는 듯한 착각이 재미있다. 한강시민공원 한 쪽에선 모처럼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젊은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빼앗긴 모습을 되찾으려는 피터팬의 발 끝 마냥 그림자는 떠날 듯 말 듯 이어지며 신나게 공놀이를 흉내 낸다. 병장기를 챙겨 든 조선 군사들의 자취는 연극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았고, 산책 나온 강아지는 발 맞춰 쫓아 오는 닮은 꼴 친구가 마냥 반갑다.
봄 따라 온 봄 그림자를 미행해 봤다. 도로 위나 광장, 담벼락을 스크린 삼아 펼쳐진 봄볕의 향연이 볼 만하다. 따가울 정도로 눈이 부시는 햇살만큼 투영되는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 진다. 윤곽 속에 숨은 알 수 없는 표정들은 한바탕 그림자 쇼, 제대로 즐기려면 어느 정도의 상상력은 필수다. 그림자에 집중해 보니 시간에 따라 짧아지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게 늘어나기도 하는 요술 같은 변신술도 새삼 흥미로워 보인다.
간혹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림자 연극이 일상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는 그림자가 현실이 되고 진짜는 가짜 취급을 받는다.
해질 무렵 광장 한 쪽에서 고릴라가 자전거를 탄다. 고릴라의 실체가 누구든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오늘 태양이 준비한 서커스는 여기까지니까.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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