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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도 해고 몸서리… 장년층 퇴출 후 임시ㆍ일용직 전전

입력
2015.03.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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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ㆍ근로시간 조정 등 노력 없이

권고사직ㆍ명퇴 명분 '합법적 해고'

中企-구직자 매칭 시스템 부족

대부분이 단기ㆍ저임금 일자리

재취업해도 임금 월 평균 184만원

2008년까지 한 중견기업의 경영관리실장으로 일했던 문채식(53)씨는 회사 경영 사정 악화로 퇴직한 뒤 5~6년간 단기 기간제 일자리를 전전했다. 지난달 서울시청 청사의 정규직 시설청소원으로 취업한 그는 “중장년층이 안정적인 제2의 일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고 말했다.

정규직도 해고에서 안전하지 않다

지방의 한 국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문씨는 1989년부터 기업의 재무회계, 경영관리 부문에서 20년 간 경력을 쌓았다. 출판 기업에서 근무하던 문씨는 능력을 인정 받아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됐고, 경영관리실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때 회사가 운영하던 직업전문학교의 행정실장으로 파견 발령 받았던 문씨는 결국 원래 자리로 복귀하지 못했다. 문씨는 회사로부터 “앞으로는 대표이사가 경영실장까지 겸직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회사가 문씨를 직접적으로 해고한 것은 아니었으나 원래 자리가 없어진 문씨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규직 노동자 역시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가 합법적으로 근로자를 퇴사시킬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은 근로자가 원한 것이 아니어도 자발적인 이직으로 간주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장년(50~64세) 남성의 경우 권고사직ㆍ명예퇴직으로 인한 조기퇴직 비율이 16.9%에 달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근로자가 사측의 희망퇴직ㆍ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잘 모르는 부서로 배치되거나 급여가 깎여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며 “퇴직금을 받고 나가느냐, 불명예스럽게 해고당할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회사의 강요에 가깝지만 법적으로는 근로자 진의에 의한 퇴사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도 낮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고용보호지수에서 한국의 ‘정규직 해고 제한’은 22위로 하위권이었다. 정규직 해고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의미다.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인 서울시청 시설청소원으로 채용된 직원들이 청사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대기업 근무 등의 경력을 갖고 있지만 퇴직 후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인 서울시청 시설청소원으로 채용된 직원들이 청사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대기업 근무 등의 경력을 갖고 있지만 퇴직 후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제2의 기회 없는 현실

문채식씨를 포함해 지난달 채용된 서울시청의 시설청소원 8명 모두가 50대다. 여전히 자녀의 등록금, 주택 대출 자금 등의 지출 때문에 재취업한 경우가 많다. 서울시의 일자리는 1,900만원의 연봉과 60세 정년을 보장한다.

문씨는 퇴직 후 경력을 살려 중소기업에 재취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퇴직 직전 연봉이 7,000만원이었던 그에게 면접관들은“중소기업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문씨는 2011년부터는 경력에 대한 고려 없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어야 했다.

퇴직 후 문씨가 처음으로 월급을 받은 자리는 고용노동부의 통계 조사원이었다. 오전 9시~오후 6시 전화 조사와 서류 정리를 하며 한달 꼬박 근무해 100만원가량 받았다. 이마저도 최장 6개월까지만 근무할 수 있었다. 고용인원을 늘리기 위해 한 사람당 3개월짜리 계약이 2회까지만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시 산하 기관인 품질 시험소에서 택시 미터기 품질 검사를 하며 6개월, 문화재 관리인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옥을 관리하며 11개월을 보냈다.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버텨낸 문화재 관리인 자리였지만 계약 연장은 불가능했다.

이처럼 재취업을 원하는 장년층에게 열린 자리는 단기ㆍ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년 재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임시직으로 재취업한 사람이 58만명(29.1%), 일용직이 33만명(16.5%)으로 불안정한 일자리가 절반에 달했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이들의 임금은 월 평균 184만원으로 2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받는 593만원의 31%에 불과하다.

재취업 왜 어렵나

서울시 정규직 시설청소원처럼 정년이 보장되는 제2의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구직자들과 전문가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적은데다 일자리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채식씨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일자리 상담센터에 가면 자기소개서 작성법, 면접방법을 알려주는데 20년 경력의 퇴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교육이 아니다”며 “구인에 애를 먹고 있는 중소기업과 구직자들을 직접 연결해주는 일자리 매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2013년 구직을 원하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구직 시 애로사항으로 느끼는 점은 ‘적합한 일자리 부족’이 52.6%로 가장 많았고, ‘취업 정보 부족’(39.3%), ‘고령에 따른 취업 곤란’(38.5%)이 뒤를 이었다.

도재형 교수는 “일자리 질이 전체적으로 나빠지고 있어 결국 자영업을 하게 되지만 자영업도 망하기 쉽다”며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자영업이 살고, 내수 시장이 살아나면서 중소기업에도 좋은 일자리가 생기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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