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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 갈등… 미국이 본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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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 갈등… 미국이 본 해법은?

입력
2015.03.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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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냉각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동북아에서 한ㆍ일 동맹 관계가 절실한 미국 정부는 ‘한일 관계는 중재할 수도 없고, 중재를 해서도 안된다’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미국 워싱턴의 한국과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냉랭한 관계 회복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외교ㆍ통상분야의 깊이 있는 분석으로 정평이 있는 넬슨리포트의 편집자이자 발행인 크리스 넬슨은 이런 해법을 내놓았다.

편집자주

2014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중재로 마련된 이 회담에서 미국 기대와 달리 냉각된 한일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자, 오바마 대통령은 4월 서울을 방문해 일본의 진솔한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중재로 마련된 이 회담에서 미국 기대와 달리 냉각된 한일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자, 오바마 대통령은 4월 서울을 방문해 일본의 진솔한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한일관계 회복에 대한 미국의 조바심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시의 미국기업연구소(AEI)가 마련한 ‘한일 관계 50년’ 세미나. 이 자리에는 ‘오바마 1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었던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시아ㆍ태평양 담당 부차관, 빅터 차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보좌관, 닉 에버스타트 AEI 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치열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으며, 미국의 중대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참석자들은 현재 한일 두 나라 정상 간의 불통은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진행됐다며, 오바마 행정부의 지속적 관여나 개입 없이는 개선될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한일관계 개선 방안의 하나로 미국의 거물 정치인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셔틀 외교’방식을 제안했다. 한국과 일본 정상이 만남을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로부터 입장을 전해 듣고 갈등을 봉합하는 중재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두 나라 사이가 더욱 경색돼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잇단 망언으로 발등 찍은 일본

아베 정권은 출범 이후 최근 3년간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1945년 패망 이전 저지른 만행에 대한 역사 기술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외교적ㆍ전략적으로 일본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자충수로 작용하고 있다. 또 주변국과 국제사회 비난 수위가 높아지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한일관계가 작동을 멈추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고민도 깊어져 왔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미국 입장은 분명치 않았다. 2012년 당시 캠벨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 뉴욕 지역에 위안부 피해자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고 일본이 공식 항의했을 때 한국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한 속내를 내보였다.

그는 필자도 참석한 개인적 모임에서 “일본의 과거사 부정이 심해진다면, 이번 사태를 미국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하도록 조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공식 입장에는 도쿄와 서울의 반목이 전략적 동맹 협력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일 갈등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일본과의 정보공유 협정체결을 취소한 여파라는 점이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한일 갈등에 미국은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역사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베 총리 스스로 모호한 발언을 쏟아냈고, 그의 참모들도 도발적 발언을 계속했다. 그런데도 ‘언론 자유’라는 부실한 해명만 이뤄졌고, 집권 자민당 의원 중에서는 때때로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2014년 4월 서울 청와대 정상회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 나란히 서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행해진 것은 끔찍한 인권침해였습니다. 전쟁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충격적인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이 문제를 인도적 차원의 민감성과 함께 ‘한ㆍ미ㆍ일 3각 동맹’차원에서 신중히 다루길 희망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전달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베 총리는 약속을 지키라”며 오바마 대통령을 거들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아베와 보수성향 지지자들에게 미국이 정서적ㆍ인도적 관점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 편이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도 과거사와 관련해 한국과 같은 입장이라는 점도 은연중 강조됐다.

● 고개 드는 ‘한국 피로증’

전시(戰時) 성노예 문제 등과 관련, 제국주의 일본이 사죄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슬픈 정서에 대해서도 언제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전략 동맹의 의미까지 고려해야 하는 미국 정부와 워싱턴 전문가들의 시각은 이미 한국과 일본의 중간지대로 이동해온 한 상태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웬디 셔먼 국무부 차관 발언에 대한 한국 언론의 반응은 한국과 미국의 인식 격차를 보여준다. 한국 언론이 ‘셔먼 차관이 일본 편을 들었다’고 분노한 건 그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까지 비판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셔먼 차관은 워싱턴 카네기 재단에서 아시아 전문가와 외교관 등을 대상으로 한일관계 경색에 대한 미국의 오래된 우려를 전달했을 뿐이다. 그의 언급 중에는 고위 관료가 내놓기에는 너무 직설적인 게 일부 포함됐지만, 워싱턴 전문가들에게는 대체로 균형 있고 잘 정리된 설명이었다.

때문에 나를 포함한 워싱턴 외교가 사람들은 ‘한국 지도자도 일본의 한반도 강점과 2차 세계대전 때 만행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색할 때가 됐다’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한국 언론의 보도를 접하고는 모두 놀랐다.

미국 독자들에게 한국 언론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사과와 보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양국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논리에만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셔먼 차관과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1994년 고노(河野) 담화 이후 다수의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피해자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고 생각한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전체 한국인을 대신해 공식적으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사과를 받아 들이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친일적인 주장’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지만, 한국 내부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김대중-오부치’합의가 한국에서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보수파와 상관없는, 양심적 일본인마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끊임없는 사과 요구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한국 피로’(Korea Fatigue)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셔먼 차관이 한국과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역사를 ‘애국심 게임’에 이용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그래도 책임은 도쿄가 더 크다

한일 역사갈등 문제는 결론내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4월 아베 총리의 방미와 미 의회 합동연설 때문에 더욱 주목 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전문가들도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그가 한일 우호관계 회복을 위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지, 아니면 단지 미국만 기쁘게 하는 수준에 그칠 지에도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에 대해 워싱턴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다양한 평가와 입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미국 관료들도 다음의 한 가지만은 의심의 여지 없이 공유하고 있다. 바로 한일 과거사 문제는 제국주의 일본의 행위에 관한 것이며, 두 나라 정상의 우호 관계 회복을 위해 누군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면 서울이 아니라 도쿄라는 점이다.

크리스 넬슨ㆍ ‘넬슨 리포트’ 편집ㆍ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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