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군침 흘리게 만드는 음식들
“이쪽엔 박하 향기가 나는 납작한 박하 사탕이 있었다. 그리고 쟁반에는 조그만 초콜릿 알사탕, 그 뒤에 있는 상자에는 입에 넣으면 흐뭇하게 뺨이 불룩해지는 굵직굵직한 눈깔사탕이 있었다. 단단하고 반들반들하게 짙은 암갈색 설탕 옷을 입힌 땅콩을 위그든씨는 조그마한 주걱으로 떠서 팔았는데, 두 주걱에 1센트였다. 물론 감초 과자도 있었다. 그것을 베어 문 채로 입 안에서 녹여 먹으면, 꽤 오래 우물거리며 먹을 수 있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많은 소설 중 학생들의 주목도로 순위를 매긴다면 폴 빌리어드의 단편 ‘이해의 선물’이 단연 1위일 것이다. 줄거리는 어린 소년이 사탕을 잔뜩 고른 뒤 버찌씨로 계산을 한다는 것인데, 누군가에겐 통화의 가치를 이해 못하는 소년의 순수함과 그것을 “돈이 남는다”는 말로 지켜준 사탕가게 주인의 감동 스토리일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에겐 글자 앞에서 침을 줄줄 흘린 첫 경험으로 각인됐다.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유독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호랑이와 술래잡기를 한 깜둥이 꼬마의 이름이 삼보인지 삼바인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뜨거운 정오의 햇살 아래 뛰던 호랑이가 버터로 녹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그 버터를 가져다가 구운 팬케이크라니….
음식이 글자에 갇혔을 때 그 향과 식감을 끄집어내기 위해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증폭된다. ‘빨강머리 앤’의 초콜릿 캐러멜과 ‘운수 좋은 날’의 설렁탕과 ‘보물섬’의 럼주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과 ‘탈출기’의 두부와 ‘작은 아씨들’의 생강빵과 ‘올리버 트위스트’의 귀리죽이 그렇다. 이 음식들은, 마치 ‘베르사이유의 장미’ 오스카의 목소리처럼 영원히 상상으로 남겨두는 게 가장 좋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식탐은 그것이 활자로만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다. 요리 연구가이자 식재료 마켓 ‘네타스키친’의 주인장인 차유진씨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렬한 팬인 그는 하루키의 책 속에서 등장하는 음식들로 구성한 에세이 ‘하루키의 레시피’를 펴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눈물과 군침을 동시에 흘린다는 차씨를 찾아가 소설 속 요리를 부탁했다.
‘극히 보통의 햄버거 스테이크’가 중요한 이유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음식인 경우는 많지만, 음식이 등장하는 모든 소설이 인상적이지는 않아요. 어떤 작가들은 음식을 그냥 배경처럼 쓰는 반면 어떤 작가들은 음식이 우리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진정으로 알고 사용하거든요. 10년 넘게 요리를 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분간되더라고요.”
그에게 하루키는 당연히 후자의 작가다. 하루키가 작품에 음식을 등장시키는 방식에 대해 차씨는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바로 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요리라는 일상을 통해 더욱 또렷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허기를 해결하는 인류보편의 행위가 소설 속 인물과 독자를 연결하고, 그것은 “그 글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국에 밥 말아서 꼭꼭 씹는 사이에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수많은 하루키 작품 중 유독 차씨가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작품은 단편소설 ‘창’이다.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들의 문장을 평가해주는 일을 하는 남자 주인공은 일을 그만 두면서 회원 중 한 명인 여성으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그 초대의 핑계가 돼준 것이 햄버거 스테이크다. 햄버거 스테이크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 편지를 받고 마음이 동해 집 근처 식당을 찾은 남성은 ‘일본식’ ‘하와이안식’으로 변형된 스테이크를 보고 실망하여 다시 편지를 띄운다. 그저 보통의 햄버거 스테이크를 원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주겠다며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햄버거 스테이크의 맛은 근사했다. 향신료를 알맞게 썼고, 파삭파삭하게 구워진 껍질 안쪽에는 육즙이 잔뜩 괴어 있었다. 소스 상태도 이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맛있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먹은 것이 생전 처음이랄 수는 없어도 실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기뻐했다.”
편지와 초대, 요리라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던 두 사람의 만남은, 그러나 별 다른 일 없이 끝나고 만다. 우리 인생이 늘 아무 일 없이 끝나는 것처럼.
“햄버거 스테이크는 여러 개의 재료가 잘 섞이도록 신경 써서 치대고 빚는 과정이 어떤 요리 동작보다 감각적이죠. 저에겐 이 과정이 섹스와 인간 관계에 대한 메타포로 다가왔어요. 언젠가 마음에 둔 사람에게 요리를 하나 만들어준다면 그것은 반드시 햄버거 스테이크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소설 속 ‘보통의 햄버거 스테이크’를 재현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파삭파삭한 껍질, 잔뜩 괸 육즙, 기교 없이 재료와 정성으로 승부를 보는 보통의 맛이다. 물론 음식을 먹어줄 상대를 앉혀 놓고 온갖 재료를 치대는 끈적한 시간도 필수다.
육즙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차씨는 직접 갈아 만든 빵가루를 소량만 집어 넣었다. “시중에 파는 빵가루는 너무 메말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식빵의 앞뒤를 갈아서 빵가루를 만들면 훨씬 촉촉합니다.” 양도 중요하다. 빵가루가 적으면 고기 모양 빚기가 어렵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빵가루를 잔뜩 넣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손바닥 위에서 얄밉게 요동치는 고깃덩이를 조심조심 추슬러 팬 위로 옮기는 노력이 잔뜩 괸 육즙의 첫 발이다.
고기를 팬에 올릴 땐 미리 팬을 충분히 달군 다음 올려야 바삭한 겉면과 풍성한 육즙을 모두 얻을 수 있다. 두꺼운 햄버거 스테이크는 팬만으로 속까지 익힐 수 없기 때문에 겉만 익힌 뒤 오븐에서 2차로 굽는다. “고기 두께를 얇게 하면 팬만으로도 구울 수 있어요. 하지만 얇은 햄버거 스테이크는 어쩐지 (인스턴트) 햄버거 패티 같지 않나요? 든든한 한끼 식사를 대접하는 느낌을 주려면 아무래도 두꺼운 게 좋죠.”
겉면이 캐러멜 색깔이 나도록 지진 고기는 은박지에 싸여 오븐으로 들어간다. 차씨는 고기가 은박지에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양파를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렸다. 갈은 고기로 만든 요리는 입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부서질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잠시 후 어마어마한 두께의 햄버거 스테이크가 오븐에서 나와 곁들이 채소 옆에 놓인다. 파삭하게 구워진 표면, 갈라진 틈 사이로 먹음직스럽게 괸 육즙, 채소에 은은히 밴 월계수 향. 완벽한 보통의 햄버거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남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한한 호의는 무리 없이 호감으로 발전했을까,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언제 감지했을까.
관능의 요리는 결국 독자의 기대를 져버리지만, 각종 재료를 한 데 섞어 오래오래 치대며 관계의 심화를 가늠했던 그 순간은 두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을 터다. 그리고 그 장면은 핥아먹고 싶은 텍스트로 우리 앞에 남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보통의 햄버거 스테이크 만드는 법
1. 다진 쇠고기에 빵가루, 계란, 다져서 볶은 양파, 소금, 후추를 넣어 5분 이상 충분히 치댄다.
2. 양손에 비닐 장갑을 끼고 모양을 잡아준 뒤 기름 두른 팬에 두껍게 썬 양파와 함께 올린다.
3. 양파를 먼저 빼내고 고기의 겉면이 노릇하게 색이 날 때까지 굽는다.
4. 은박지 위에 양파를 깔고 그 위에 스테이크를 올린 뒤 17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15~20분 간 굽는다.
5. 기름과 버터에 줄기콩과 양송이 버섯, 소금, 후추, 월계수 이파리를 넣어 볶은 뒤 고기와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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