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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행복을 찾아서

입력
2015.03.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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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행복의 조건을 세 가지만 찾으면 무엇이 될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동양 유학사회에서는 맹자(孟子)가 말한 삼락(三樂), 즉 세 가지 즐거움을 최고로 쳤다.

“군자(君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어버이께서 다 살아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無故)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을 굽어봐서 부끄럽지 않는 것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英才)들을 얻어서 가르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진심(盡心) 상’)” 맹자의 삼락(三樂)을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고도 한다.

‘논어’ 첫머리는 공자가 말한 세 가지 즐거움으로 시작한다. 공자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說)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樂) 아니한가(‘학이(學而)’)”라고 말했다. 배움의 즐거움과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즐거움이 인생의 큰 기쁨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세 번째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을 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라고 말했다. 이 구절에는 세속적인 인생에서 실패했던 공자의 비애가 그대로 담겨 있는데, 남의 무시를 감내하는 것 또한 군자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만난 영계기(榮啓期)의 삼락도 있다. 영계기는 세상을 피해 사는 은사(隱士)였다. ‘열자(列子)’ ‘천서(天瑞)’편에 따르면 공자는 태산을 유람하다가 영계기가 사슴 털 갖옷을 입고 새끼줄로 만든 허리띠를 매고도 즐겁게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자 “선생은 무엇 때문에 그리 즐거우십니까”라고 물었다. 영계기는 “하늘이 만물을 낼 때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낮은데 나는 남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사람이 태어나서 강보(襁褓ㆍ포대기)를 못 면하고 죽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아흔 다섯까지 살고 있으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요”라고 답했다.

영계기가 “가난은 선비에게 늘 있는 일이고 죽음은 사람의 마지막인데 늘 가난하다가 인생을 마칠 것이니 어찌 걱정하겠소”라고 덧붙이자 공자가 “맞습니다. 스스로 달관한 분이십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공자나 맹자의 삼락을 유가(儒家)의 삼락이라면 영계기의 삼락은 도가(道家)의 삼락이다. 공자는 영계기를 높게 평가했지만 정작 유가들은 도가들의 삶의 자세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자신의 한 몸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것인데, 영계기의 삼락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평생 출세를 지향하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후한(後漢)의 명장(名將) 마원(馬援)도 마찬가지였다. 마원은 예순세 살 때인 후한 광무제 건무(建武) 25년(서기 49) 이민족 정벌을 위해서 지금의 호남(湖南)성 원릉(沅陵) 동북쪽의 호두산(壺頭山)까지 갔다가 큰 위기에 빠졌다. 전세는 지지부진한데다 더위에 전염병까지 돌아서 수많은 군사들이 죽고, 마원도 더위 때문에 토실(土室) 속에서 지내야 했다. ‘후한서’는 마원이 “내 종제(從弟) 소유(少游)가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단지 옷과 밥을 해결할 수 있으면 부모님의 분묘나 잘 모시고 향리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나 들으면 그만이지 차고 넘치는 것을 구하면 단지 괴로울 뿐’이라고 했다”면서 “내 누워서 종제가 평시에 했던 말을 생각해보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구나”라고 한탄하며 죽었다고 전한다.

행복에 관한 책이 여럿 나와 있는데 개인적 자족(自足)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내용이 많다. 개인적 자족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도가적 행복관이다. 상촌 신흠은 ‘서독(書牘)’에서 친하던 추포(秋浦) 황신(黃愼)이 죽은 후 세상을 살고픈 생각이 없다면서 “50년을 살아오면서 세상의 변고를 빠짐없이 맛보았는데 먼저 죽은 자가 필시 행복할 것입니다”라고 토로했다. 영의정까지 역임하는 신흠이 먼저 죽은 자가 행복할 것이라고 토로한 것은 개인의 행복이 사회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해준다. 사회 정의 실현과 함께 어울릴 때 개인의 자족도 사회와 겉돌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가의 조롱에 공자가 “새, 짐승과 더불어 무리로 살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논어 ‘미자’)”라고 말한 것이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 길을 걷는 것이 군자의 행복이란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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