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홧발·다듬이질 소리에도 리듬감
러브라인 어색하지만
이지숙 노래·조연들 연기 탁월
이야기는 보도사진작가 베르너 비쇼프가 1952년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한다. 전쟁포로들이 복면을 써 얼굴을 감춘 채 짝을 맞춰 춤추는 기괴한 장면. 수용소 내 포로들은 공산당파와 반공파로 갈라져 대립했고, 미군으로부터 춤 노래를 배운 반공파 포로들은 얼굴이 노출되면 공산당파 포로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복면을 썼던 것이다. 창작뮤지컬‘로기수’는 이 사진에 상상력을 더해, 탭댄스를 통해 꿈을 키우게 된 소년의 이야기로 엮었다.
거제포로수용소 안에서 인민군 장교 로기진은 인민군 포로들을 이끌며 반공분자 색출에 앞장선다. 함께 수용소에 들어온 동생 로기수는 형과는 달리 유약하고 철없는 모습으로 무시받기 일쑤다. 미군은 적십자의 수용소 시찰 때 공연을 하기 위해 로기수를 선택하고, 로기수는 “미국은 싫지만 댄스는 좋다”며 미국 흑인 장교의 탭댄스에 마음을 빼앗긴다. 소년에게 춤은 고향도, 사상도 버릴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삶의 의미가 된다.
여느 창작뮤지컬처럼 산만한 구성, 뇌리에 남지 않는 노래와 같은 것을 떠올리는 관객들의 기대를 이 작품은 통쾌하게 깨뜨린다. 전쟁 속 다양한 인간군상과 이념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 가족애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반전 등 극적 장치로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특히 조연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극에 재미를 더한다.
가장 큰 볼거리는 화려한 탭댄스. 배우의 스텝을 따라 바닥에서 솟아나는 경쾌한 소리와 군홧발로 걷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 바둑 두는 소리 등 무대 위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리듬을 탄다. 1950년대 유행하던 음악과 최근 유행하는 록, 발라드를 접목해 완성한 26곡의 뮤지컬 넘버는 이야기에 힘을 보탠다. 복심 역의 이지숙 노래도 수준급이다.
다만 거제포로수용소의 복잡했던 상황을 파노라마처럼 단시간에 펼치는 극 초반 10분은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급하고 어지럽다. 극의 긴장을 풀기 위해 넣은 로기수와 복심의 러브라인도 어색하다.
로기수 역을 맡은 유일의 ‘고음불가’ 노래도 아쉬움을 남긴다. 단,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는 그의 탭댄스는 특별한 대사 없이도 꿈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대현 윤나무가 트리플 캐스팅됐다.
5월 31일까지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02)541-2929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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