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책임자 최갑수 서울대 교수

"국사·동양사·서양사 교수 300명 1500여개 표제어 해설

9년간 역사학계 연구 성과 집약… 역사대사전 발간 밑거름 됐으면"

최갑수 교수는 “중국, 일본, 프랑스, 인도 등이 모두 자국의 역사대사전을 펴냈는데 우리의 경우 아직 시도조차 되지 못한 형편”이라며 “우리 세계관이 깃든 사전이 발간된다면 역사인식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동양사ㆍ서양사ㆍ국사학 등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의 역량을 결집한 ‘역사용어사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가 9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2,136쪽 분량에 담아낸 1,500여개 표제어에 대한 해설은 사전적 소개 수준을 뛰어넘는다. 민주주의, 근대국가, 봉건제 등의 45개 대항목에 대한 정성스런 소개는 각 200자 원고지 100매에 달한다. 전공 교수들이 표제어마다 이름을 걸고 써내려 간 만큼 그간 축적한 연구의 정수가 모였다.

22일 연구실에서 만난 편찬책임자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그 동안 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학의 분과학문 체계 안에서 서로 달리 사용돼 온 용어 숙어 담론들을 함께 묶어내자는 취지에서 처음 사전을 구상했다”며 “그간 일부 소사전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발간된 역사 관련 사전은 일본 것을 베낀듯한 책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사업으로 2006년 시작된 사전 집필에는 300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먼저 소장학자들로 구성된 기획위원회가 표제어 후보를 정하는 등 초기 틀을 잡았다. 원로로 구성된 항목선정위원회가 후보 중 표제어 항목과 작성자를 선정ㆍ추천했다. 300여명의 필자가 참여하고, 마지막으로 19명의 편집위원회가 재검토하는 등 전 과정에 단계별 위원회가 공을 들였다.

최 교수는 “안타깝게 우리는 독자적인 근대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근ㆍ현대 세계의 많은 용어가 서양으로부터 들어왔다”며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서양을 길들이느냐는 생존에 관한 중요한 문제인 만큼, 각 용어 해설에 국내 학문 성과를 접맥시켜 우리 중심의 세계사에 대한 관점을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학문적 통일성을 꾀했지만, 한 단어에 대한 소위 3사학과의 관심의 결이 다른 경우 각 학문의 맥락에 따라 유래, 용례, 사건 등을 각각 풀어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상이한 각도로 2,3명의 필자가 쓴 해설을 나란히 읽는 재미도 있다. 혁명 쿠데타 민주주의 등이 대표적이다.

혁명은 동양사학의 관점에서는 고대 역성혁명에서부터 공산혁명까지 혁명의 개념과 사례를, 서양사학의 관점에서는 유럽의 발명품으로서의 혁명의 기원과 역사적 변천을 소개했다. 쿠데타는 서양사학의 관점에서 정의와 용례를, 국사학의 관점에서는 ‘5ㆍ16 쿠데타’등의 사례를 소개한다. 민주주의는 국사학과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민주화운동, 성격과 특징 등을 설명하는데 이어, 서양사학과 교수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근대의 변용 등을 풀어낸 해설을 나란히 담았다.

베트남왕조 인도왕조 몽골왕조 등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충실히 담긴 것도 특징이다. 최 교수는 “아프리카사, 서남아시아 등에 대한 연구자가 부족해 관련 표제어를 넣지 못하는 등 역량만큼이나 한계도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했다.

9년간의 대장정을 마치자마자 최 교수는 인명, 지명, 사건 등을 보강한 본격적인 ‘역사대사전’ 편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91년 발간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있긴 하지만 세계사를 아우르는 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독립적 문화 단위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을 바르게 이해해야 하잖아요. 그런 세계관을 반영한 대사전이 우리에게는 전무합니다. 예산도 시간도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이번 사전이 그런 역사대사전 편찬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아요.”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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