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실장 작년 12월13일 올라
겨우내 차디찬 바닷바람 버텨
"노사 신뢰회복이 매듭 푸는 열쇠
복직투쟁은 계속 진행하겠다"
22일 낮 12시30분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부장이 100여개 철제 계단을 밟고 굴뚝 40m에 올랐다. 점심식사 가방을 고리에 건 뒤 밧줄을 잡아당기자 도르래가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거셌다. 가방이 크게 흔들렸다. 가족들이 만든 인삼튀김ㆍ파김치ㆍ양파장아찌 등 땅에서 보낸 음식은 30m 더 위에 있는 하늘에 닿았다. 지상 70m 굴뚝 꼭대기. 파란 겨울점퍼를 입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이날로 100일째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작년 12월 13일 시작된 굴뚝 농성 이후 계절도 바뀌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하지만 굴뚝 위는 여전히 시리다. 경북 영주에서 온 이모(46)씨는 “고공농성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의 문제일 수 있다”며 현장을 찾은 이유를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함께 살자’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창근 실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노사 신뢰 회복이 매듭을 푸는 열쇠”라며 “회사와 정부가 비용과 이익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사지(死地)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직투쟁을 계속 진행할 것이기에 농성 100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굴뚝에서 내려올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7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일 오전 10시30분 땅을 밟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뵙죠”라며 굴뚝에 오른 지 101일만에 고공농성을 마치기로 했다. 그는 “굴뚝에 올라 있는 게 원활한 교섭 진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나 싶어 열흘 전부터 내려갈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굴뚝농성은 끝나지만 쌍용차 조합원들은 몸과 마음으로 시련의 계절을 견디고 있다. 조합 간부 등 복직 투쟁 전임자 30여명은 시민들이 후원한 생계비(각 월 80만원 남짓)로 생활한다. 복기성 수석부지부장은 “7년째 복직 투쟁을 벌이다 보니 이제는 일하고 싶은 절박함과 일터로 복귀하고픈 간절함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도 2012년 11월 20일부터 171일 동안 공장 정문 앞 30m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김수경 쌍용자동차지부 조직부장은 “세 자릿수로 넘어온 농성일자가 계속 늘어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2009년 쌍용차 집단 해고 이후 자살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26명이다.
쌍용차 노사는 ▦해고자 복직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쌍용차 정상화 ▦26명 희생자 유가족 지원대책 등 4대 교섭 의제를 갖고 지난 1월부터 6차례 대화에 나섰다.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지만 정리해고 이후 5년 5개월 만에 공식 교섭을 시작한 것도 의미는 있다. 양 측은 26일 7차 실무교섭을 열고, 3차 대표교섭도 진행한다. 쌍용차 관계자는 “경영 여건에 따라 1,900여명에 달하는 희망퇴직자를 순차적으로 복직시키겠다는 게 회사 입장”이라는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장은 “합의점을 찾자는 데에는 노사가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공장 서쪽, 농성 천막과 굴뚝을 가르는 철조망에 걸린 자물쇠들도 바람에 달랑거렸다. 자물쇠에 적힌 ‘돈보다 생명을’ ‘사랑하며 삽시다’ ‘함께 살자’는 글귀 역시 함께 흔들렸다.
평택=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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