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산맥' 넘어 함께 잔 기울이던… 두 '거인'의 재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산맥' 넘어 함께 잔 기울이던… 두 '거인'의 재회

입력
2015.03.22 16:06
0 0

영화 '화장'으로 10년만에 재회한 임권택(오른쪽) 감독과 안성기.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영화 '화장'으로 10년만에 재회한 임권택(오른쪽) 감독과 안성기.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50년 넘게 카메라의 앞뒤에 각각 서 있었던 이들은 오래 전부터 충무로를 상징했다. 이름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이 붙곤 했다. 숱한 별들이 떴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내달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은 그들의 빛나는 이력이 덧없지 않았음을,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그들의 깊이 있는 활기가 스크린에 새겨질 것임을 시사하고 예고한다. ‘취화선’(2002)이후 13년 만에 ‘화장’으로 의기투합한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를 지난 19일 오후 서울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둘이 다시 영화로 만났을 때 감회가 달랐을 듯하다.

임권택 감독(임)= 오랜 세월 영화를 같이 해온 사이이고 어떤 연기자인지 잘 알아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이 내게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든든한 동지와 함께 한다는 기분이었다.

안성기(안)=‘오염된 자식들’(1982)이후 ‘태백산맥’(1994)에 출연할 때까지 10년 넘게 감독님과 함께 하질 못했다. ‘왜 안 불러주시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따지고 보면 마땅한 작품도 없었다. 아마 내게 맞는 영화가 있었으면 분명 불러주셨을 텐데. 종종 뵙지만 작품으로 뵈니 기뻤다.

-소설 ‘화장’의 어느 점 때문에 연출을 했고 출연 결심을 내렸나.

임=오랫동안 영화감독으로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임권택의 틀이 생겼다. 내가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수난사나 판소리를 담은 내 옛 영화들을 훌쩍 벗어나 ‘화장’으로 일상의 모습을 한번 담고 싶었다.

안=예전부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독한다(‘화장’은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화장’은 굉장히 섬세하면서 문학, 예술적으로 아주 깔끔한 단편이라 읽을 당시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임권택 감독.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임권택 감독.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영화 ‘화장’은 암환자 아내(김호정)를 4년 동안 간호해온 오상무(안성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오상무는 회사 여직원 은주(김규리)와의 일탈을 잠시 꿈꾸기도 하나 가정에서나 회사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대기업 임원이라는 번듯한 직함과 10억대의 주택, 별장까지 지녔으나 삶은 건조하다. 영화는 흔들리는 마음을 누르며 아내를 간호하고 업무를 보고 장례를 묵묵히 치러내는 오상무의 고독한 삶을 차갑게 그려낸다. 인생 대부분을 효율을 따지며 사무적으로 살아온 한국 50대 남자들의 삶이 담겼다. 오상무가 투병에 힘겨워하는 아내를 붙잡고 소변을 보도록 돕는 장면, 아내의 대변 처리를 위해 기저귀를 갈아주는 모습 등이 매우 세세하게 묘사돼 관객들을 상념에 젖게 한다.

주연을 맡은 안성기.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주연을 맡은 안성기.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노출을 마다하지 않으며 투병과 간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임= 스위스에서 유명한 한 의사가 내 영화를 보고 굉장히 감동했다고 얘기했다. 사실감이 있어 무척 좋다고 했다. (영화 속에 묘사된) 투병과 간호 과정을 자기 간호사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감을 놓치면 영화가 공중으로 뜬다고 생각했다.

안= 자칫 잘못하면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현실감 있게 그려지면서 가슴을 친다.

-영화 촬영 중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임= 원작의 힘, 박력이라고 할까. 소설은 오상무의 의식세계를 엄청난 힘으로 그려냈는데 그걸 영상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안= 오상무의 감정을 쌓아두는 작업이 굉장히 힘들었다. 촬영 후에도 흐트러지지 않게 감정을 가둬두어야만 했다. 회사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중증 전립선 비대증에 따른 고통, 아내의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마음이 뒤섞여 연기가 나와야 하니 힘들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임= 오상무가 욕실에서 소변보는 아내를 돕는 장면이다. 오래 살아온 부부이면서 가리고 싶은 부분이 있는 아내의 자존심 같은 것, 고통 받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미안함을 제대로 전하려면 배우의 치부가 얼핏 드러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 영화 인생에서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안= 개인적으로는 오상무가 회식 때 춤추는 은주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을 좋아한다. 감추고 싶은 오상무의 속마음을 카메라가 훔쳐보는 느낌을 준다.

-‘국민감독’ ‘국민배우’로 불리니 부담은 없었나.

임= 이렇게 오래 이 나이까지 많은 편수의 영화를 해낸 것을 보면 우리에 대한 큰 실망감이 없었던 듯하다. 나이 들면서 사회에 밝고 건강하게 기여하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우리 도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안= 관객이 기대하는 것만큼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다. 열심히 연기하라는 걸로 받아들인다. 나는 어차피 제작도 안 하고, 감독도 되지 않고 배우만 할 생각이니까 그리 부담은 없다.

-둘 다 100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하거나 출연했다. 장수의 비결은 무엇인가?

임= 나는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인간인데 평생을 영화 만들면서 살았으니 엄청난 행운이다. 관객의 지지가 없어서는 불가능한데 내가 지지를 받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안= 영화만 쭉 했기 때문에 영화배우라고 믿음을 주는 게 있는 것 같다. 삶을 사는 데 있어서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매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노력도 했다.

-둘이 함께 한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안= ‘만다라’(1981)와 ‘축제’(1996)다. 특히 ‘축제’는 제 친척들이 보고선 많이 울었다. 전화도 많이 받았다. 여러 연기자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속에서 튀지 않고 평범하나 인간적인 모습을 연기할 수 있어 아주 좋았다.

임= ‘축제’는 ‘서편제’의 소설가 이청준의 소설로 만든 영화인데 이청준이 기대를 많이 했다. 그가 영화를 본 뒤 (‘서편제’보다) 한참 위라고 했다. 그런데 흥행에서 아주 작살이 났다(웃음). 그래도 (영화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축제’ 이야기를 한다.

-둘이 함께 영화 찍으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임= ‘만다라’ 촬영 때다. 두 승려에 대한 영화인데 주인공들이 영화 밖에서도 수도자의 고행을 겪었다. ‘이야, 저 사람들(전무송 안성기) 독한 사람’이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법운(안성기)이 산사를 태우는 마지막 장면을 국립공원 안에서 찍었다. 잘못해 불이 번지면 전부 철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안= 처음엔 불을 넣을 때 불이 붙지 않아 굉장히 당황했다. 그래도 산밑에 소방차가 한 두 대 와 있었다.

임= 거리가 멀어서 불이 나도 소방차가 물을 뿌릴 수 없었다. 그냥 불러만 놓은 것이지(웃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박준호 인턴기자(동국대 불교학과 4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