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직원부터 부장판사까지 기쁨과 고민 나누며 소통
“스물일곱 된 딸 결혼 때문에 걱정이에요. 김 판사님은 결혼 했어요?”(성낙송 수원지법원장) “제가 스물여덟인데 따님 결혼 고민 들으니 뜨끔한데요. 올해는 저도 정신차려야겠습니다.”(김초하 판사ㆍ사법연수원 42기) “다른 판사님들, 김 판사님께 여쭤보실 말씀 없으세요? 남자친구가 있느냐든가(하하하). 우리 김 판사님 수영도 잘해요.”(성 원장)
지난 20일 낮 12시 10분쯤 수원지방법원 4층 회의실에선 도시락을 앞에 두고 모여 앉은 판사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취미와 건강, 자녀 결혼 문제, 출ㆍ퇴근 교통난 등 사소한 걱정과 고민을 공유하는 모습에선 이들도 여느 소시민과 다름없어 보였다.
성 원장을 비롯해 판사 14명이 법복을 벗고 모인 이 자리는 수원지방법원이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한 ‘희망토크’의 16번째 행사다. 매주 화ㆍ금요일 점심시간에 진행되는 희망토크는 성 원장의 아이디어다. 지난해 부임해 올해로 2년째 수원지법을 이끌고 있는 그는 “직원들에게 자랑스런 동료가 곁에 있다는 것을 일깨우려 벌인 일”이라며 “제 스스로 동료들을 섬기는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싶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성 원장의 관심과 지원 속에 수원지법은 지난해 11월 회의실 공간을 새로 단장하고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박한 장비도 들여 놓았다.
이렇게 첫 걸음을 뗀 희망토크의 대상은 사무국 9급 직원부터 수석 부장판사까지 수원지법 일꾼 모두다. 매번 13,14명이 부서별로 돌아가며 참여한다. 지난 3일부터는 판사(138명)들도 개당 8,000원짜리 도시락을 놓고 마주앉기 시작했다.
희망토크에 가면 성 원장이 제공하는 특별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성 원장은 희망토크 시작 10여분 전 미리 회의실에 도착,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도시락을 직접 나른다. 물과 주스도 일일이 따라 테이블을 세팅하고 직접 고른 클래식 음식도 잔잔하게 틀어놓는다. 도시락을 다 먹은 뒤엔 부드럽고 은은한 향의 커피까지 책임지는 센스 만점의 셰프가 되는 것이다.
희망토크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술값시비 폭행 ▦동료판사 판결 비판 ▦막말 댓글 ▦명동사채왕 금품수수 등 최근 법원 신뢰를 떨어뜨리는 사건이 잇따르자 내부 단속을 위해 벌이는 ‘이벤트’가 아니냐는 것이다.
성 원장은 “지난해부터 시작을 해보려는 찰나에 여러 일들이 터져 난감하기도 했었다”며 “그렇다고 직원들을 가까이 만나야 하는 것도 말아야 하나 생각하니, 그건 아니더라”고 했다. 자리를 지정해 명패를 놓고 사전 질문을 받는 등의 모든 격식을 탈피한 것도 혹시 오해를 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탓이었다.
희망토크에 참여하는 직원과 판사들은 이미 서로를 알아가는 맛에 푹 빠진 분위기다. 막바지에는 이야기 시간이 부족하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윤성열(37ㆍ사법연수원 35기) 공보판사는 23일“원장님이 직원 대부분의 이름과 특징 등을 외우고 계셔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가신다”며 “서로에 대한 애정과 세상살이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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