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술 발달하고 비용 싸져 확산… 줄리, 돌연변이 발견해 유방 절제술
유전성 유방암·대장암 상담 많지만 개인정보 보호 등 과제도 남아
질병치료는 예방이 최선이다. 각종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알 수 있다면 발병을 미리 막거나, 적어도 효과적인 대처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예측 능력이다. 나와 가족에게 어떤 질병이, 언제쯤, 얼마의 확률로 발병할지 정확히 알아내기는 현 의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의학ㆍ과학 기술은 날로 진보하고 있다. 분자생물학ㆍ세포유전학적 분석 기술 발달로 질병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 유형과 발생 기전이 속속 밝혀지면서 질병의 위험률 예측 능력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제네릭 카운슬링(genetic counselingㆍ유전상담)은 이런 흐름에 따라 점점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의료 서비스다.
국내에서 유전상담의 역사는 길지 않다. 유럽 등 선진국에선 1990년대 임상에 도입됐고, 현재 미국 대형병원들에서는 이를 위한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 한 상태다. 할리우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암 발생에 관여하는 BRCA1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 유방 절제술을 받으면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현재 각종 암 중에서 유전상담이 가장 활발히 도입되고 있는 분야는 유방암과 대장암이다. 암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가장 많이 발견된 분야들이다. 전체 암의 5~10%가량은 유전이 원인이고, 이런 유전성 암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총 150개가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암 환자에게 유전상담을 하고 있는 국내 병원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암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속속 추가되고 있고,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ㆍ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의 발달에 따라 유전체 분석이 예전보다 한결 쉬워지고 값싸지면서 유전상담에 관심을 쏟는 병원과 의사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유전상담은 단순한 유전자 검사만은 아니다. 유전질환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해당 질환이 무엇인지, 증상과 경과는 어떤지, 대처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환자의 특정 질환 위험도를 평가하거나, 환자나 그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대처도 이에 포함된다.
적용 대상 암종은 병원마다 다르다. 암 유발 유전자가 뚜렷한 유방암과 대장암에 집중하는 병원이 대다수인 가운데, 더러 모든 암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김열홍 고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가족성 대장암 유전자에 주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해 12월 대장암 확진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유전상담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임상연구 결과 전체 대장암 환자의 5~7%가량은 가족성 유전자 때문”이라며 “가족성 대장암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경우 평생에 걸쳐 대장암, 위암, 자궁암(여성의 경우)의 발생 위험이 크게 높아짐은 물론 그 가족들에서 이들 암이 줄줄이 생겨난다”고 했다.
대장암에서는 APC, MUTYH, MLH1, MSH2, MSH6 유전자 돌연변이가 암 발생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유전성 및 가족성 암으로는 유방암과 난소암이 손꼽힌다. 유방암ㆍ난소암에서는 BRCA1, BRCA2의 돌연변이가 문제의 원인이다.
박지수 연세암병원 암예방센터 교수는 유전상담의 적응증과 관련해 “다양한 유전성 암과 가족성 암 환자들이 대상”이라며 “그 중에서도 유전성 대장암과 유전성 유방암ㆍ난소암의 진료 건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유전성 대장암은 가족성 샘종 폴립증, 약화형 가족성 샘종 폴립증, 유전성 비용종성 대장암 등을 포함한다.
김종원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적용 대상 분야를 특정 암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현대 의료체계는 특정 장기나 시스템이 중심이지만, 유전자는 모든 세포에 존재하므로 모든 장기와 시스템이 암 발생의 후보”라면서 “분석 대상을 한정 짓지 않아야 정확한 진단과 분석이 가능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진단은 분자유전 및 세포유전학적 분석을 통하는데, 분자유전학적 방법으로 염기서열 분석법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환자의 병력과 가족력을 토대로 조직검사를 해 이상 유전자 보유 여부를 확인한 뒤 혈액검사를 통한 정밀 분석으로 확진하는 것이 보통이다.
검사 비용은 유전자와 검사법의 종류, 카운슬링의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유종하 일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검사 비용은 유전자마다 조금씩 다른데, 50만 원 선이고 암 환자일 경우 이중 5%를 본인부담금으로 지불한다”고 했다. 박지수 교수는 “유전자 검사에 따라 본인부담이 5만~110만 원 정도”라며 “카운슬링에 대해 기본 진료비 이외에는 따로 청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열홍 교수는 “유전자를 하나 하나 분석해야 하는 지금의 검사법은 유전자당 35만 원”이라며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을 통한 새로운 검사법으론 10가지를 한꺼번에 보는데도 50만원이면 된다”고 했다. 김종원 교수는 “유전상담의 범위를 단순 유전자 검사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비용이 10만~1,000만 원으로 크게 달라진다”고 했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6명(59%)은 자신의 전체 유전자를 해독하는 전장 유전자검사를 받는 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유전상담이 보다 널리 이용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 보험 적용을 통한 비용 낮추기, 유전자 이상에 따른 공포감 해소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유전상담의 확산에는 기대와 우려도 엇갈리고 있다. 김열홍 교수는 “암에 잘 걸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일은 환자에게 커다란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 대물림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며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술에 대한 보험 적용 등을 통해 검사 비용을 좀 더 낮춰야 한다”고 했다. 박지수 교수는 “전문인력을 배출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한편, 유전상담에 대한 합당한 수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유종하 교수는 “유전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신장, 지능, 체질 등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는 외려 유전자 낙인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김종원 교수는 “제네틱 카운슬링은 우리 사회의 법적, 사회적, 윤리적 기준과 부합해야 한다”며 “유전상담이 없는 유전 검사와 진단은 환자에게 해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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