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구조 개편ㆍ대잠능력 강화 등
5년째 성과 없고 통영함 비리만
천안함 피격사건은 전략과 전력 모든 면에서 우리 군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계기였다. 이후 ‘천안함을 기억하라’는 구호 아래 대비태세의 일신을 시도했다. 정신 전력과 무기체계의 혁신이 눈에 띄게 변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5년 동안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국방 당국은 사건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의 작전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우선 해군 함정이 2대씩 움직이는 동조기동을 하도록 했다. 천안함 피격 당시 후방에 있던 속초함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애꿎은 새떼만 쫓다 북한 잠수정을 놓친 탓이다. 함정의 작전반경도 2배로 넓혀 적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낮췄다. 북 잠수함(정)의 동향에 이상징후가 포착될 경우 해군 함정의 이동속도를 높이고, 갈지자로 변칙 운행하는 ‘변침’을 강화하는 지침도 내렸다. 함정의 이동경로를 북한군이 예측할 수 없도록 하는 회피전술의 일환이다.
작전개념으로는 ‘적극적 억제’가 부각됐다. 기존 ‘전수방어’에서 벗어나 북한의 임박한 도발위협에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개념이다. 북한의 실제 도발에 즉각 응징하는 자위권도 부쩍 강조됐다. 천안함 피격 원인이 북한 어뢰라는 점을 입증하는데 두 달이나 걸리면서 군사적 보복조치를 취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다.
대잠능력 강화 등 해군 전력 확충에도 상당한 예산을 쏟아 부었다.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대통령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발족해 군 지휘구조 개편을 비롯한 국방개혁에도 속도를 냈다. 군 내부에서는 육ㆍ해ㆍ공군의 합동성 강화가 연일 주차됐고 ‘제2의 창군’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군이 받아 든 성적표가 신통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군 지휘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적극적 억제와 자위권은 말 뿐이었다.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당시 서해 NLL로 출격한 전투기들은 미사일 한발 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와야 했다.
국방개혁도 말의 성찬에 그쳤다. 합참의장이 육ㆍ해ㆍ공군총장을 지휘하는 상부구조 개편안은 자군 이기주의와 국회 반대에 부딪쳐 표류하고 있다. 긴급소요로 투입한 예산이 육군 전력증강에 편법으로 전용되는가 하면, NLL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우리 함정들은 새로운 소나(음파탐지기)를 달았지만 여전히 북한 잠수함(정)을 찾는데 역부족이다. 천안함 사건을 거치면서 ‘잠수함 잡는 킬러’로 기대가 컸던 해상작전헬기 사업도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천안함 사건의 의미는 방산비리 때문에 빛이 바래기도 했다. 천안함 피격 당시 해군의 낡은 수상함구조함이 현장까지 이동하는데 이틀이나 허비했던 아픈 기억으로 추진됐던 통영함 사업은 해군 비리의 대명사 격이 됐다. 천안함 사건의 교훈이 도리어 졸속 사업 추진과 해군의 고질적인 비리 구조라는 걸림돌을 만나 전력 강화가 지연되고 만 셈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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