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시라의 연기가 돋보이는 역대 드라마 명장면 4
채시라가 연일 화제다. KBS2 수목극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의 열연이 돋보여서다. 1980년대 10대 초콜릿 광고로 데뷔해 하이틴 스타가 된 채시라는 어느덧 연기 경력 30년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가 됐다. 연기 잘하는 20대 여배우로 이름을 알렸던 MBC ‘여명의 눈동자’, 달동네 소시민의 삶을 대변했던 드라마 MBC ‘서울의 달’, 사극으로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렸던 MBC ‘미망’과 KBS ‘왕과 나’, KBS ‘해신’, KBS ‘천추태후’ 등 3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굳힌 채시라. ‘국보급’ 연기로 롱런하는 그녀의 활약상을 짚어봤다.
MBC ‘여명의 눈동자’(1991~1992년) 철조망 키스신
2년간의 대기획으로 총 36부작으로 제작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우리 시대의 뼈아픈 역사를 재연하며 50%가 넘는 시청률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현재 방송계의 큰 기둥으로 자리한 고 김종학 PD가 연출을 맡고 송지나 작가가 극본을 썼다. 중국 본토와 필리핀 등에서 현지 로케이션으로 촬영돼 총 제작비가 70억원이 넘는다. 김성종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를 배경으로 일제의 강제 징용, 일본군위안부, 제주 4.3 항쟁 등 우리 역사의 굴직한 장면들이 안방 극장에 전해졌다.
일본군으로 강제 징용된 최대치(최재성)와 위안부로 끌려간 윤여옥(채시라)이 재회하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키스신은 ‘여명의 눈동자’를 넘어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역사적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가슴 시린 장면이지만 실상은 중국 하얼빈에서 무려 3,000여명의 중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촬영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이 키스신을 꼽은 채시라는 “‘여명의 눈동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채시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KBS ‘왕과 비’(1998~2000년) 연산군과 대결 장면
조선의 성종과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그리고 연산군에 이르는 대서사시를 담은 KBS 대하사극이다. 채시라는 덕종의 비이자 성종의 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인 인수대비 역을 맡아 정치적 야망을 품은 여성으로 등장한다. 186회 동안 인수대비의 젊은 시절부터 백발이 무성한 노인을 연기한 채시라의 나이는 불과 31세였다.
이 드라마의 명장면은 자신의 어머니가 폐위 당한 것을 알고 격분하는 연산군(안재모)와 인수대비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다. 채시라는 이 장면에서 더할 나위 없는 연기력으로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해 묻는 연산군을 향해 달래려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설득하다가 결국 비밀을 폭로하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돌변해 연기했던 채시라. “주상!”을 외치며 여장부의 풍채를 유감없이 발휘한 그녀는 이때부터 카리스마 있는 강인한 연기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현재 30대 초반 여배우 중 채시라만큼 인수대비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후 채시라는 JTBC ‘인수대비’(2011)에서 주인공 인수대비로 재등장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KBS ‘애정의 조건’(2004년) 모정 표현 장면
강금파, 강진파, 강은파 세 자매의 굴곡진 인생을 그린 주말드라마다. 첫째 딸 강금파 역을 맡은 채시라는 변호사 남편을 두고 남부러울 것 없던 가정주부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서 온갖 역경을 견뎌내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채시라는 남편과 헤어지면서 생활고와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하는 막막한 상황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의 안타까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 연기파 배우로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애정의 조건’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채시라가 두 주먹으로 가슴팍을 때리며 아이를 걱정하는 슬픈 모정을 그린 모습이다. 친정 엄마의 만류에도 계속 가슴을 치던 채시라는 “난 괜찮아 엄마. 이까짓 피 좀 나면 어때. 아이를 어떻게 보내. 엄마 나 미쳐 미쳐!”라고 눈물로 울부짖으며 혼절하는데, 이 연기가 압권이다. 여자이자 엄마, 딸의 심경을 대변하는 연기에 온 국민을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여성 시청자들이 눈물을 훔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채시라의 연기 변신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시청률 40% 이상을 기록해 ‘역시 채시라’라는 칭송을 받았다.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2015년) 눈물범벅 훈계 장면
지금까지의 채시라 연기를 총망라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시라는 억울한 누명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해 학력 콤플렉스를 지닌 아줌마 김현숙으로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문제아와 사고뭉치로 살아오면서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딸을 최연소 대학 교수로 키워낸 억척스런 엄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부지 근성은 어쩔 수 없는 법. 친정 엄마의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해 몽땅 날리고, 불법 도박장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다가 경찰에 쫓긴다. 찢어진 슬리퍼를 신고 도망가다 눈물 콧물로 화장이 범벅된 아줌마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 드라마에서 압권은 눈물로 번진 화장을 한 채시라가 친구를 폭행하려 드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혼내주는 장면. “야! 이 악마의 자식들아! 저주 받을 놈들 당장 그만두자 못해!”라고 말하며 제대로 망가지는 연기는 ‘채시라의 재발견’을 목격할 수 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