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동물병원
동물도 사람과 공동대표로 선출
800여 조합원 힘 모아 내달 개원
“동물병원에 대한 오해와 불신, 저희가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공동 대표인 병원,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된다. 다음달 말,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동물병원이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문을 연다. 병원이름은 ‘우리동생’으로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의 줄임말이다. 사람대표와 마찬가지로 투표를 거쳐 선발한 동물대표 보리(6)는 상징적인 의미지만 우리동생이 동물과 사람을 동등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동생은 수의사법 개정으로 수의사가 아닌 이가 동물병원을 개원하려면 비영리법인단체여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지난 2월, 긴 기다림 끝에 정부가 인가를 내주면서 우리동생이 반드시 넘어야 했던 난제가 해결됐다.
2013년 1월, 9명으로 첫 모임을 시작한 우리동생이 835명(4일 기준)의 조합원과 함께 개원을 맞기까지 꼬박 2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막바지 개원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경섭(44) 대표는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첫 사례여서 정부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다. 해외에서도 첫 사례일 것 같아 기네스북에 등재할 예정”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동생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와 고민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아울러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제도적 인프라 속에서 찾아낸 자구책이기도 하다. 첫 모임 이후 SNS를 통해 조합원을 모집했는데,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아이쿱생협ㆍ한국사회투자로부터 경영자금 융자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1억원을 지원받아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더해 1억 7,000여만원으로 병원 설립을 시작했다. 빠듯하기만 한 자금사정 때문에 현재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그간 조합원들은 병원설립 과정에서 부딪힌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을 거듭해 왔다.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조합원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최선책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정 대표는 “수의사 고용부터 병원비 책정, 병원 로고 하나까지 모든 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한다”며 “모두가 주인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동생의 최우선 목표는 병원 운영 전반에 걸친 정보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 동물병원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없애는 것이다. 1999년 정부가 동물병원 간 담합을 막고 자율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동물의료수가제도를 폐지했지만, 취지와 달리 일부 병원들이 너도나도 진료비를 올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동물병원 진료비는 ‘부르는 게 값’으로 여겨졌다. 정 대표는 “기존 동물병원들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 오해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스스로 이런 상황을 자초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동생이 좋은 자극제가 되어 함께 개선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의사들이 우리동생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만 우려와 달리 우리도 터무니없이 낮은 진료비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조합원들과 회의를 거쳐 합리적인 비용을 책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동생의 또 다른 목표는 사람과 동물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더불어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동물을 맡기고 돌보는 ‘돌봄네트워크’로의 확장도 구상하고 있다. 정 대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역할을 반려동물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궁극엔 단절된 사회를 이어 다 함께 행복한 공동체가 생겨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전담 수의사를 고용하는 것. 조합원 중 현직에서 은퇴한 수의사 지광범(59ㆍ서울대 수의학과 75학번)씨가 개원 전반에 걸친 총괄을 맡고 있지만 병원 운영을 전담해 줄 원장 수의사는 아직 공석이다. 그래도 정 대표는 긍정적이다. 그는 “개원 전까지는 우리동생과 뜻을 같이 해줄 분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우리동생은 4월 말 개원 이후 동물 진료뿐 아니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마련에 매진할 계획. 지점 확산은 계획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생명 감수성이 풍부한 지역을 만드는 것이 곧 인간이 풍요로워지는 길이죠. 우리동생을 통한 마을 회복에 집중할 겁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라도 잘 해내보자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글ㆍ사진=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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