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가까이 팀장의 폭언에 시달려 온 회사원 김모(33)씨는 이제 팀장이 어떤 욕을 해도 흘려버릴 정도로 ‘맷집’이 강해졌다. 물론 김씨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이른바 ‘멘탈 갑(甲)’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김씨의 상사인 팀장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김씨를 불러다 “왜 이렇게 개념이 없냐, 뇌를 들여다 보고 싶다”거나 “보고서가 천박하다”고 하기 일쑤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김씨는 ‘내가 정말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가’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모멸감을 어떻게든 되갚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어 무력감에 시달렸다는 김씨는 “너무 화가 나 밤에 자다가 깬 것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괴로워하던 김씨가 찾은 돌파구는 결국 ‘자신을 믿는 것’이었다. 김씨는 “팀장이 나뿐 아니라 수시로 다른 팀원들한테도 욕하는 것을 보며 내가 아닌 팀장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후 팀장 말을 무시하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분노가 가득했던 가슴에 ‘월급은 인내의 대가’라는 말을 아로새겼다. 그는 “현실적으로 당장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는 상황이라 팀장이 뭐라 하든 그냥 넘기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모멸감을 느낄만한 상황을 앞두고 미리 마음을 단련시키는 모임도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공부 모임인 ‘모욕(압박 면접) 스터디’가 한 예다. 구직자들끼리 가상 면접 상황을 설정하고 상대의 말 실수나 신체적 약점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식으로 진행되는 이 모임에서는 살벌한 말들이 오간다. “이 나이 되도록 뭐했어요” “애인 있어요? 취업하면 바로 결혼하고 애 낳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등 실제 면접에서 맞닥뜨릴 인격모독적인 질문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미리 모욕을 경험하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대놓고 드러내 모멸감을 상쇄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는 ‘광두회(光頭會)’라는 대머리 남성들의 모임이 있다. 이들은 대머리는 감춰야 할 부끄러운 대상이라는 편견에 맞서며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를 희화화하기도 한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의 책 ‘모멸감’에 따르면 이들은 ‘머리가 아름다운 사람 선발대회’를 열기도 하고, 두 사람 머리카락에 각각 흡착판을 붙인 뒤 끈을 이어 줄다리기를 하는 ‘유다모(有多毛) 모임’ 등 흥미로운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빛나는 머리로 사회를 밝히자’며 도로 커브길 거울을 닦는다거나 가드레일에 야광반사 테이프를 붙이는 등 자원봉사에도 앞장서 대머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1972년 도쿄에서 처음 생겨난 광두회는 결성 5년 뒤 전국조직으로 확대됐고, 외국까지 네트워크를 넓혔다.
남보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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