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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업신여겨, 당하곤 못 살아" 적개심이 계획적ㆍ묻지마 범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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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업신여겨, 당하곤 못 살아" 적개심이 계획적ㆍ묻지마 범죄로

입력
2015.03.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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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깔봤다(disrespected).”

‘폭력’의 원인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제임스 길리건 뉴욕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1999년 내놓은 한 논문에서 살인죄로 수감 중인 범죄자의 범행 동기가 대부분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모멸감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모멸감이 극한 적개심으로 표출될 경우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6월 강원 고성군 육군 모 부대 일반전방소초(GO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피의자 임모(22)병장은 K-2 소총을 10여 발 난사해 12명의 사상자를 내기까지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는데 평소 느껴왔던 모멸감이 원인이었다. 지난해 9월 열린 공판에서 임 병장의 변호사는 “소대원들이 피고인을 악의적으로 상징하는 그림을 초소에 그렸으며, 피고인은 선임병과 간부들의 놀림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모멸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학교폭력에서도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상황을 보면 자신이 느꼈던 모멸감을 갚아주겠다는 마음으로 또 다른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할 때 느끼는 모멸감ㆍ수치심ㆍ비하감ㆍ열등감이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출될 때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 또한 모멸감과 관련 있다. 이달 12일에는 일용직 노동자 박모(50)씨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서울 구로구의 한 문구점과 약국에서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두르며 시민들을 위협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누가 욕을 하거나 무시하면 당장 보복하기 위해 평소 40㎝ 크기의 흉기를 지니고 다녔다”고 진술했는데 평소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최근 “무동기성 범죄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고민이 크다”며 “전문가들에 연구를 의뢰했고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성에 대해서도 관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살인 등 강력범죄의 경우 우발적 발생이 2011년 30.4%에서 2013년 33.8%로 늘었다. 범행에 대한 계획과 특별한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 분노와 같은 감정이 범죄로 이어지는 게 우발적ㆍ무동기적 범죄인데, 최근 증가 추세라 경찰에서도 각별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다. 윤 부연구위원은 “누구나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요즘 사회에서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우발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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