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지금 필요한 건 ‘작은 변화’다

입력
2015.03.18 18:51
0 0

거창한 구호, 거대 담론만 무성해

한국사회 중층적 문제 해결 어려워

문화와 풍토 바꿀 작은 변화 필요

기업 경영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놀랄 때가 적지 않다. 복잡한 사안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그들의 실용적, 문제해결 지향적 사고 방식 때문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관피아니 국가개조니 해서 문제를 확대하면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돼요. 평형수를 빼고 짐을 실어 사고가 났으니 가장 기본적인 ‘과적 체크’가 왜 안됐는지, 그걸 어떻게 구조적으로 뜯어 고칠지에 집중해야 해요.”

최근 로마 교황청에서 한국 주교단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소식에 지난해의 일들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세월호(4월16일)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얼마나 달라졌을까. 당시 검찰은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관피아 범죄, 민관유착 비리를 척결하겠다며 대대적 수사에 나섰다. 과문한 탓인지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 걸까. 정부가 또다시 부패의 발본색원에 나섰다. 이완구 총리의‘부정부패와의 전쟁’ 선언에 대통령도 힘을 실었다. 이번 타깃은 주로 대기업과 이명박 정권 실세들이다. 부패를 없애겠다는데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사법 당국이 조용히 항시적으로 수사하면 될 일을 이렇게 부산을 떠는 것 자체가 후진적이다. 철 지난 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시킨다. 올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찍는다는데 이런 행태는 접을 수 없을까.

사실 현 정부 들어 답답하고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선 때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에서 본래의 DNA대로 경제활성화 쪽으로 방향을 튼 건 그렇다 치더라도, 실천전략과 목표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거창한 구호와 어젠다가 난무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못하는 말들을 너무 쉽게 쏟아 낸다. 창조경제, 비정상의 정상화, 통일대박, 규제 혁신 등 수 많은 말의 성찬이 이어졌지만 정작 지난 2년여 동안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메뚜기처럼 국가의 정책이 어젠다와 어젠다, 슬로건과 슬로건 사이를 표류하는 느낌이다.

창조경제만 해도 그렇다. 정권 출범 후 1년 넘게 모호한 수사만 난무할 뿐 개념이 무엇인지 조차 헷갈리다가 지난 해부터 지역별로 할당된 대기업과 관련 중소 벤처기업의 짝짓기 형식으로 정리됐다. 말이 창조경제이지 박근혜 정부판 ‘동반성장’이다. 최근 들어서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벤치마킹해 IT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공장을 2020년까지 1만개 만들겠다고 한다. 이제야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은데, 거대 슬로건에 함몰되다 보니 그간 시간만 허비한 꼴이다.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을 내걸었지만 무얼 어떻게 바꾸겠다는 세밀한 전략이 보이지않는다. 노동문제만 보자.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임금체계 개편 등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견해차가 커 이달 중 대타협은 난망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정부가 노동시장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먼저 공직사회부터 ‘칼 퇴근’ 문화를 정착시켜 민간으로 확산시키면 장시간 근로와, 수당을 타먹기 위한 쓸데 없는 야근 등을 하는 문화도 개선되고, 일자리 나누기 등의 기회도 열릴 수 있다. 이로 인해 일과 가정의 양립, 저출산 문제를 푸는 실마리도 도출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내수, 투자, 수출이 동시에 위축되고 저출산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사회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속 시원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 변화는 단시일 내 가능하지 않고, 근본적인 담론 제기는 오히려 현안 해결을 회피하는 구실이 된다. “현 정부가 지난 2년간 한 게 뭐 있냐”는 힐난이 나오는 이유다.

“숨만 잘 쉬어도 인생이 바뀐다”고 한다. 큰 것을 개혁하려면 작은 것부터, 풍토와 문화부터 바꿔나가는 실사구시적 자세가 필요하다. 노동개혁도 그렇고, 공공개혁도 그렇다. 작은 변화는 축적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소소한 변화들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