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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행진의 교훈 잊었나, 인종차별 치부 드러낸 美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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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행진의 교훈 잊었나, 인종차별 치부 드러낸 美 공권력

입력
2015.03.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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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시 경찰·법원 상습적 차별, 흑인 주민 93%가 경찰에 체포 경험

셀마 행진 50주년, 흑인 투표 막는 남부 주들에 항의

흑인 참정권이 위협받고 있다, 2013년 투표권법 일부 위헌 판결

시위 대원들이 지난 1965년 3월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서 '우리는 셀마와 함께 행진한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시위 대원들이 지난 1965년 3월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서 '우리는 셀마와 함께 행진한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지난해 8월 9일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한 미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는 이달 들어 관련 공무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있다. 19일자로 퍼거슨시 토머스 잭슨 경찰서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지난 10일에는 경찰을 관리 감독하는 퍼거슨시 행정담당관(시티매니저) 존 쇼가, 9일에는 퍼거슨시 법원의 로널드 J. 브록메이어 판사가 사표를 냈다. 5일 퍼거슨 경찰서 릭 헨키 경감과 윌리엄 머드 경사가 사임했고 법원 서기 매리 앤 트위티는 4일 해고됐다.

퍼거슨시 공직자들에게 몰아친 사퇴바람은 4일 발표된 미국 법무부의 퍼거슨시 조사 보고서가 직접 원인이다. 브라운 사망 사건으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연방정부 법무부가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조사에 나선 것이다.

미 법무부의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국가에 의한 인종 차별이 종식되고, 단어 하나만 잘못 써도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회적 지탄을 받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시민을 보호하고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해야 할 공권력의 집행 기관에서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벌어졌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퍼거슨시 경찰과 법원이 상습적으로 흑인을 차별했고, 특히 흑인을 집중적으로 겨냥해 도로교통 범칙금과 벌금을 거둬들여 시 재정을 확충해 왔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퍼거슨시에 사는 약 1만4,000명의 흑인 중 93%에 달하는 약 1만3,000명이 경찰에 체포된 경험이 있었다. 2012년부터 2014년 사이 차량 불심검문을 당한 사람의 85%, 체포된 사람의 93%는 흑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과태료 부과 대상 위반 행위로 소환장을 발부 받은 사람의 90%이 흑인이었고 ‘도로보행규정 위반’으로 소환장을 받은 사람의 95%가 흑인이었다는 집계도 나왔다. 퍼거슨 주민의 67%가 흑인인 것을 감안해도 유독 흑인에게만 공권력의 단속이 편중됐다. 이처럼 단속 대상자 대부분이 흑인이지만 법 집행자의 비율은 정반대였다. 퍼거슨시 경찰관 중 흑인 비율은 불과 7%에 불과했다. 퍼거슨시의 경찰 간부급 53명 중 50명이 백인이며 시장을 비롯해 시 의회 의원도 6명 중 5명이 백인이고 단 1명이 흑인이다.

경찰관들의 인종차별 행위와 관리 감독 소홀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퍼거슨시 경찰관 2명과 법원 서기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흑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오랫동안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간 전자메일을 지인과 주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 행정담당관은 경찰의 인종차별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법원 판사는 흑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벌금 딱지를 부과해 왔다는 혐의를 받았다. 경찰서장은 브라운 사건 발생 후 총을 쏜 경관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고 사망 직전 브라운의 절도 장면을 부각해서 공개해 여론을 호도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보고서가 발표된 후 퍼거슨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이번에는 경찰관 2명이 시민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는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격화된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한 흑인 시위대원이 지난 11일 미주리주 퍼거슨시 경찰서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자 소리를 지르며 반발하고 있다. 퍼거슨=AFP 연합뉴스
한 흑인 시위대원이 지난 11일 미주리주 퍼거슨시 경찰서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자 소리를 지르며 반발하고 있다. 퍼거슨=AFP 연합뉴스

흑인 10대 경찰총에 사망할 확률 백인의 21배

공권력의 인종차별은 비단 퍼거슨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10대 남성 흑인이 경찰 총에 맞아 사망할 확률이 같은 나이의 백인 남성과 비교해 무려 21배나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지난해 10월 2010년~2012년 연방수사국(FBI)에 보고된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사건 1,217건을 분석한 결과 15~19세 남성 흑인 사망 비율은 100만명 당 31.17명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나이의 백인 사망률은 100만명당 1.47명이었다.

1980년부터 2012년까지 경찰 총에 맞아 숨진 14세 이하 청소년 40명 중 흑인이 27명으로 세명 당 두 명 꼴이었다. 나머지는 백인 8명, 히스패닉 4명, 아시아계 1명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분석 결과에 대해 “많은 경찰관이 흑인 남성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도시 풍경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로 본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브라운을 쏜 경찰관 대런 윌슨의 총격 순간에 대해 “그가 마치 내가 그에게 총을 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처럼 총알 사이로 돌진해 왔다”고 증언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흑인을 영혼 없는 괴물처럼 묘사하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등 투표권 얻어낸 셀마 행진은 현재진행형

법무부의 퍼거슨시 조사 보고서 발표가 이뤄진 지 3일 후인 7일에는 미국 흑인 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셀마 행진’ 50주년 기념 행사가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시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와 당시 경찰 폭력에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흑인 인권운동가 존 루이스 하원의원을 비롯한 의원 100여명 등 4만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난 50년간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퍼거슨 사건에서 보듯 인종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셀마의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셀마 행진은 1965년 3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한 시위대가 흑인 투표를 막는 남부 주들의 행태에 항의해 셀마에서 앨라배마 주도인 몽고메리까지 87㎞를 평화롭게 행진한 시위다. 두 차례 이어진 행진에서 경찰과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이 벌어지자 전국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이 벌어졌다. 결국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흑인들의 투표를 막는 법규와 관행을 금지하는 ‘투표권법’ 도입을 제안했고 3월 21일 벌어진 3차 행진에서 2만5,000여명의 시위대는 미 육군의 호위를 받으며 주 의사당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지난한 투쟁으로 얻어낸 흑인 참정권이 50년이 지난 지금 위협받고 있다. 미국 최초 흑인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는 셀마 행진 기념행사 다음날인 8일 “셀마 행진으로 얻어낸 투표권법이 오늘날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셀마 행진 5개월 뒤 흑인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막았던 읽고 쓰기 능력 테스트나 투표세 등의 선거절차를 금지하는 투표권법에 서명했다. 그러나 2013년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투표권법에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주정부가 선거법을 개정할 때 소수인종의 투표권 행사를 어렵게 하지 못하도록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4조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주정부의 선거법 개정 시 연방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주를 법으로 정한 제5조는 합헌 판결을 받았으나 직접 연관된 제4조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음에 따라 5조 역시 효력을 상실했다.

대법원은 현행법 조항이 약 50년 전의 상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의회가 현실에 맞춰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위헌 결정 이유로 들었지만 시민단체들은 위헌 결정으로 일부 주 정부가 소수인종을 차별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할 여지가 커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처럼, 투표권 위헌 판결 이후 소수인종의 선거 참여를 견제하려는 시도는 노골화됐다. 지난해 1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투표 시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이 붙은 신분증(포토ID)을 요구하는 텍사스 주의 ‘투표자 신분 확인법’이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주로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 선거 부정행위를 막는다는 이유로 도입하고 있는 이 법은 많은 흑인들이 포토ID를 갖고 있지 않아 투표권이 침해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에 따르면 흑인의 25%는 정부가 발급한 포토 ID가 없어 총 600만명의 흑인이 헌법이 보장한 투표권조차 행사할 수 없게 됐다. 미 법무부는 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은 “모든 미국인들이 정당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날까지 투쟁이 이어질 것”이라며 투표권법 위헌 판결에 맞설 것을 강조한 바 있다.

한편 퍼거슨시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주목 받고 있다. 다음달 7일 퍼거슨시에서는 브라운 사망 사건 이후 처음으로 시 의원 선거가 이뤄질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3명의 시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8명의 후보자 중 4명이 흑인으로, 퍼거슨시 120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들과 퍼거슨시는 앞으로 경찰과 법원 등 공권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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