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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워" 여의도 구애에 몸 사리는 삼성

입력
2015.03.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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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위 삼성그룹 관계자들이 때 아닌 ‘여의도 노이로제’에 빠졌습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너무 치켜세우는 바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인데요.

삼성그룹은 지난주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삼성전자가 이달 초 갤럭시6를 출시하며 내세운 ‘올 뉴(ALL NEW) 갤럭시’를 본 떠 ‘올 뉴’를 당의 새로운 정책 모토로 추진하겠다는 발언에 깜짝 놀랐습니다. 민 원장은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 S6를 발표하며 ‘올뉴’(완전히 새롭게)를 모토로 삼았다”며 “새정치연합도 유능한 경제정당이 되기 위해 당의 총력을 끌어모으고, 경제문제를 대하는 당의 태도나 문화를 완전히 새롭게 하기 위해 ‘올인ㆍ올뉴’ 를 모토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1 야당이 당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정책의 모토를 자신들의 모토를 벤치마킹해서 정했으니 기분 나쁠 일 없을 것 같은데도, 정작 삼성 측 관계자들은 난감해 하니 언뜻 이해가 안 갔는데요.

삼성그룹의 커뮤니케이션 기본 원칙은 ‘티 내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입니다. 잘 한 일이든 못 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언급되지 않는 것을 제일로 삼는 것인데요.

이는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가 복잡한 데서 비롯합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삼성전자에 달려있다”고 할 만큼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모든 국민이 삼성에 대해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는 것은 아니란 걸 삼성이 잘 알고 있습니다. 삼성은 이런 ‘부정적’ 정서를 풀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티 내지 않기’는 대외 관계의 밑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민 원장의 ‘삼성 발언’이 여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정치권의 삼성에 대한 관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7월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던 윤상현 의원은 “삼성전자의 혁신을 배우자”며 힘차게 ‘삼성 띄우기’를 했습니다. 윤 의원은 “삼성전자는 혁신의 역사로,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부터 자기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1977년 한국 반도체를 인수했을 때 이 회사가 20년 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삼성전자 혁신은 뭐니뭐니해도 고객과의 소통이었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와 기술로 시장 요구에 호응해왔다” 등 삼성전자의 역사와 성공 이유에 대한 분석까지 곁들였는데요.

물론 윤 의원이 삼성전자를 띄운 것은 새누리당이 분발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새누리당이 삼성전자만 한 정당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며 “그러나 새누리당이 삼성전자 절반만큼 혁신하고 스스로 도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브랜드 가치는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삼성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회사를) 언급할 때마다 마치 우리와 뭔가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오해 받는 경우가 많다”며 “물론 나쁜 일로 언급 되는 것보다는 낫지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며 답답해 했습니다.

더구나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에 따른 위기감이 커지고 있고, ‘올뉴 갤럭시’ 프로젝트도 사실 삼성이 위기 탈출을 위해 ‘마지막 카드’로 꺼내 들었을 만큼 절박함이 묻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의도에서 들려오는 ‘삼성의 혁신을 배우자’ ‘삼성의 문제의식을 본받자’며 잘 한다고 평가하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민 원장의 발언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 삼성 따라하기를 하는 것이냐’는 문의가 빗발쳤고, 민 원장은 공개적으로 “삼성을 따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을 했습니다. 그는 19일 열리는 의총에서 제안을 하려고 준비한 내용일 뿐, 마치 ‘올뉴’가 당론으로 결정된 것처럼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요. 더구나 민 원장의 삼성 발언 이후 대외적으로 문재인 대표가 당 대표 선거 때부터 내세운 ‘유능한 경제 정당’이 결국 삼성을 본 뜬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경에 이르자 당내에서도 ‘괜한 소리 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기까지 했는데요.

사실 민 원장은 당내에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 대기업의 행태를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의원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왜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라는 논평을 내고, 금융위가 자산운용비율 관련, 다른 금융기관은 모두 ‘시가’로 평가하는데 유독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삼성생명’이 포함된 보험업만 ‘취득원가’로 평가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민 원장은 당시 “제 2금융권을 사금고로 활용하고 있는 삼성 등 재벌그룹의 명분 없는 집단이기주의를 수용해, 임원추천위원회 의무설치 기준을 후퇴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배경이, 의미가 어찌 됐든 간에 정치권과 대기업은 가까워 지기도 어렵고 가까워 졌다가는 괜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아울러 19일 새정치연합의 의원 총회에서 과연 의원들이 민 원장의 ‘삼성 발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흥미로워집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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