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CALM’ 포스터의 왕성한 생명력은 메시지가 아니라 여백에 있다. 메시지를 전하는 포스터가 아니라 메시지를 위한 여백의 포스터라는 의미다. 접속사 뒤의 대구(對句)를 채우지 못하고 내내 KEEP CALM하는 건 목숨을 다한 것일 테다. 이스라엘 총선 투표함 앞의 저 여인의 T셔츠는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뭘 극복하라(자)는 걸까.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9년 영국이 시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만든 저 포스터의 첫 메시지는 ‘진정하고 일상을 유지하라’(KEEP CALM AND CARRY ON)는 거였다. 잊혔던 포스터는 2000년 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된 뒤 옷 가방 등 다양한 자리에 다양한 내용으로 패러디 되면서 부활했다. ‘KEEP CALM’을 ‘일단 살아남아’쯤으로 번역될 ‘STAY ALIVE’로 패러디한 시리즈 등도 있다.
포스터 원안도 사실 썩 창의적인 건 아니다. 식탁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엄마들이 늘 하는 말(예컨대 KEEP CALM AND EAT IT),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할 때 하는 말이 저거 아닌가. 그 땐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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