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모집 해외 봉사단, 경쟁률 40대 1 웃돌기도
봉사도 스펙이다. 몇 년 전부터 대학가에 지상명제처럼 떠도는 말이다. 학점에 어학연수에 인턴 경험을 더하는 것도 모자라 봉사활동 이력도 있어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봉사가 취업을 위한 주요 요소로 떠오른 이유는 단순하다. 공부 잘하고 여러 업무 기술을 익힌 인재만 뽑으니 사람 냄새 나는 신입사원이 드물다는 기업들의 판단이 작용했다.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가슴 따스한 인재상이 갑작스레 부각되면서 취업 준비생들이 점검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늘어났다.
봉사활동에 대한 강박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학생 봉사단 모집 경쟁률에도 나타난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운영하는 해외봉사단 ‘해피무브’의 경우 경쟁률이 낮은 경우 20대1일 정도, 높으면 40대1을 웃돈다. 한 번에 500명을 선발해 중국과 가나 에티오피아 등 20개국에 파견하니 매 모집 때마다 2,000명 이상이 지원자로 나서는 셈이다. SK그룹이 2003년부터 운영 중인 대학생 자원봉사단 ‘SK Sunny’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해 10대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봉사활동 내용을 이력서에 추가하고 해외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대학생들의 인기를 모을 만도 하다.
취업을 위한 봉사활동이 왕성하나 대학생들은 씁쓸하다. “봉사가 남을 향한 이타심이나 도덕심에 기반한 활동이 아니라 나의 경력과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로 변질됐다”(대학 3학년 조모씨)는 느낌 때문이다. “자발적인 봉사가 아닌 타의에 의한 반강제적 활동”이라는 반감이 강한 것이다.
봉사활동 경력을 취업할 때 활용하기 위한 학생들이 늘면서 봉사기관 쏠림 현상도 생겨났다. 봉사시간 인증서를 발급해줄 수 있는 대형 기관에 주로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이 몰리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도 있다.
대기업 해외봉사단 활동을 취업 예비 관문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경쟁률이 높아 봉사자 되는 길이 취업문처럼 좁은데다 봉사활동 뒤 따라올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도 크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고 치열한 면접 경쟁까지 뚫어야 하니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원 자체가 부담스럽다. 대기업이 봉사단에서 활동했을 때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학 3학년 이모씨는 “한 대기업 봉사단 활동을 했는데 별다른 기억도 없고 보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얻은 것이라고는 봉사단 활동을 같이 한 동료라는 인맥 정도”라고 덧붙였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봉사활동과 영어점수 등 지원자들의 스펙을 신입사원 전형과정에서 보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대학생들은 난처한 기분이다. 취업에 필수라고들 하기에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도 챙겨왔는데 이제는 필요가 없다니. 입시제도의 실험대상으로 전락한 고교생들처럼 대학생들도 캠퍼스의 '실험 쥐' 신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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