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세법학자 클라우스 티프케는 “한 사람이 세금을 덜 내면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더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대통령을 압박하는 견해부터 “이제 보편적 복지의 허구가 드러난 만큼 선별적ㆍ맞춤형 복지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증세와 복지에 대한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논의와 별개로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고액체납자’ 조치다. 2014년 상반기 기준 국세청의 미정리체납액은 7조여원에 이른다고 한다. 2009년 1억원 이상 고액체납자는 3,687명이고, 그 체납액은 1조2,650여억원이던 것이 2014년 상반기에는 6,925명, 3조 2,000여억원으로 늘었다.
세수 부족을 타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의견들이 있지만, 그 중 ‘국세체납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환수할 것인가’는 별로 주목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내 통장에는 29만원밖에 없다”고 하던 전 대통령에게서 554억원을 추징한 사례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면 국세체납금 징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액체납자 조치는 먼저 명단 공개만 할 게 아니라 체납 세금을 어떻게 징수할 것이냐를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국회는 조세포탈 내지 고의적 체납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공소시효를 최대한 늘려 조세포탈 의지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기, 공갈, 횡령ㆍ배임 등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행위로 취득한 재물 또는 금액이 5억원 이상일 때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도 늘어난다. 이와 유사한 취지로 ‘특정조세범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포탈세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형량을 대폭 높이고 공소시효 역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국세청은 체납자들을 조세포탈범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문제에 대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조치로 검찰이 국세체납자 처벌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고액 체납자들에게 조세포탈을 이유로 수사권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범죄와 달리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과세 관청의 고발을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그런데 수사권이 없는 과세 관청이 범죄를 인지한다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으므로 수사해야 할 사건임에도 고발이 없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따라서 정부는 검찰을 중심으로 ‘국세체납금 특별환수팀’을 만들어 과세 관청의 고발을 활성화해야 한다.
과세 관청이 고액 체납자의 재산 도피를 발견했을 경우 민사상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에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세청과 검찰이 나서 체납자 재산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넘어간 게 아닌지 확인해야 하고, 그것이 사실인 경우 국가 로펌인 정부법무공단이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맡아 빼돌린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
또 검찰은 조세포탈범에 대한 수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정부법무공단에 이관해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체납자 이외에 대한 가압류, 가처분 조치 등)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의 책임재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정부법무공단이 공조했던 사례가 모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세징수법 및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세금체납자에 대한 출국 금지 처분을 강화해야 한다. 법무부에서 금지 처분을 해도 법원에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도피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면 이를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 납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고액 체납자들이 마음대로 해외여행 할 수 있는 것은 국민 법 감정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법이다. 고액 체납자가 거리 활보하는 것을 눈뜨고 보면서 증세와 복지로 논란 벌이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손범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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