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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길 위의 이야기] 끝을 시작하는 법

입력
2015.03.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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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수업 이번 주까지만 해주셔야겠어요.” 10여 년 전 어느 날, 미안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학비를 벌어볼까 시작했던 학원 강의가 갑자기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저 말을 한 사람 또한 학원에서 접수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자신도 일자리를 잃는 처지인지라 남까지 신경 쓰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다. 끝을 알리는 방법이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불같이 화를 냈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차마 얘기할 수 없었을 거란 변명만 들었다. 끝을 예감하고 있는 경우에는 위의 통보가 덜 충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불현듯 끝이 찾아오는 경우, 끝을 말하는 사람에 비해 끝을 듣는 사람은 여러 모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다가 나중에는 분노하고 마는 것이다.

끝을 알리는 일, 끝이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일은 시작을 알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시작은 마음을 채우는 일이라 마냥 설렐 수밖에 없다. 반면, 끝은 마음을 덜어내는 일이므로 어느 때보다도 신경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 끝을 꺼내는 법, 끝을 시작하는 법을 골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날 때도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고 인사하듯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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