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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중단 논란… 홍반장 vs 문대표 승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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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중단 논란… 홍반장 vs 문대표 승부수는?

입력
2015.03.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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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캐릭터가 참 명확한 정치인입니다. 긍정적으론 ‘소신있는’, 부정적으론 ‘독불장군 같은’ 이 정치인은 자신이 결정한 부분에 대해선 여야는 물론 정부의 압박에도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여야의 시선은 여느 보수적 정치인과 괘를 달리 합니다. 여당 의원들은 “아 좀 살살 말하시고 조용히 좀 가시지”라고 에둘러 말하는 일이 잦고. 야당은 “거 참 대책 없이 밀어부치시네”라며 매번 난감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의 캐릭터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인생 역정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1982년 24회 사법고시를 합격해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한 홍 지사는 국제 PJ파 등 조폭 때려잡는 검사로 유명세를 탑니다. 탄력을 받은 그는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면서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하면서 검사 인생의 정점을 찍습니다. 당시 그는 돈을 받고 슬롯머신 업자에 대한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로 상사인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까지 구속 기소하면서 소신 있는 검사의 모습을 확고히 합니다. 이후 일련의 슬롯머신 사건은 SBS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널리 알려지며 홍 지사는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게 됩니다.

검사 시절 기개는 정치인의 외연을 자연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홍 지사는 95년 10월 검찰에 사표를 내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발탁되며 당시 신한국당의 소장파로 1996년부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죠. 소장파의 수식어가 정치 초반부터 붙었으니,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당 내부에 날 선 지적을 서슴없이 내 뱉어 ‘입 안의 가시’로, 야당은 그보다 더 수위 높게 비판을 곧잘 해 ‘공공의 적’이 었으니, 동료 의원들 대다수가 그에게 애증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입니다.

거칠 것 없었던 홍 지사의 행보는 2010년 7월 14대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원내 정치에서도 입지를 명확히 합니다. “초창기보다 유연해졌다”는 평가와 함께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 됐던 그 시점. 아이러니하게 그는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병두 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 패하며 야인이 됩니다. 다행히(?) 그 해 12월 대선 후보 출마로 사퇴한 김두관 경상남도지사의 후임 보궐선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 권영길 전 의원을 누르고 경남도지사로 정계를 복귀하지만, 취임 이후 행보는 ‘유연’보다 다시 ‘강성’으로 유턴했다는 평가입니다.

강성 홍 지사의 정치판 복귀는 진주의료원 사태로 전국구 이슈로 부각됩니다. 홍 지사가 2013년 5월 “적자 누적과 기득권만 유지하는 노조원들의 모습에서 진주의료원 회생 가능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며 진주의료원 폐업을 공식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료원을 폐업이라는 강경카드로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 공공의료 확대를 공약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할 말을 잃었다는 후문입니다. 공식, 비공식 루트로 홍 지사를 설득하던 정부는 결국 홍 지사의 강력한 의지에 뜻을 접습니다. 야당의 거센 비판이야 당연했고, 경남 시민단체들은 홍 지사에 대한 국민소환운동까지 벌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3선 의원은 “당내에 있을 땐 당론의 이름으로 그나마 컨트롤이 가능했지, 이젠 지방분권의 명분을 들고 있는 홍 지사를 막을 사람은 없어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홍 지사의 멈추지 않는 이슈 몰이는 지난 10일 “경상남도는 다음 달부터 무상급식을 중단하고 해당 예산으로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하면서 재점화됐습니다. 야권이 선점한 무상급식 이슈에 대해 지방에선 최초로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죠. 한창 여론 조사에서 선전 중인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대표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당연했습니다. 지역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단순히 무시하기엔 당장 4.29 재보궐 선거가 코 앞이고, 표심과 직결되는 교육 복지 이슈인 점에서 내년 총선과 멀리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이 민감한 것은 이번 결정의 주체가 홍 지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진주의료원 사태를 통해 홍 지사가 다른 지자체장과 달리 여당과 정부의 통제 영역 밖의 인물임을 이미 학습한 효과가 즉각 반응된 셈입니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홍 지사가 무상급식 이슈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며 “진주의료원 사태를 봤듯 여당과 정부의 설득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 초기에 이슈를 진화하지 않으면, 여당이 잡고 있는 다른 지역까지 무상급식 거부가 번질 가능성이 높아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홍 지사만 유독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반복해 홍 지사를 이슈에서 고립시키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본다는 얘기인 셈입니다.

새정치연합의 공세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대표적 맹장인 이목희 의원은 발표 다음 날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홍 지사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며 강력히 그를 비판했습니다. 야당 중진들 역시 소통가능한 루트를 대부분 동원해 “‘집이 가난해 공짜 밥을 먹는다’는 낙인을 찍으려는 홍 지사의 행태는 정말 야멸차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해 환자들을 길거리로 내쫓더니 아이들 밥상까지 빼앗는 홍 지사는 누구를 위한 도정을 펼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슈 고립을 지속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사전 작업을 해 놓은 새정치연합은 18일 문 대표를 앞세워 홍 지사와 면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경남의 무상급식 연장 여부의 방향이 결정 될 이 자리는 공개 면담 형식이라, 자연스레 문 대표와 홍 지사의 설전은 언론에 크게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문 대표와 홍 지사 모두 이 상황을 거부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무상급식 문제의 해결책이 지속 혹은 중단 밖에 없다는 점에서 18일 면담은 정치적 쇼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홍 지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중단을 외친 상황에서 물러서기도 어려울 것이고, 야당 대표인 문 의원이 홍 지사의 주장에 손들어주긴 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죠. 결국 이날의 면담은 홍 지사를 이슈에서 고립시키려는 새정치연합의 의지와 이를 이겨내겠다는 홍 지사의 고집 중 어디가 더 강할지로 큰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장 답을 내기보다 전면전을 내다보고 유리한 형세를 서로 선점하려는 수싸움이 벌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정치권의 무상급식의 셈법은 이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아마도 경남의 학부모와 학생들이겠지요. 이들의 마음을 무시한 채 문 대표와 홍 지사가 ‘고립’과 ‘고집’의 문답만 한다면, 다른 지역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마음은 어떻게 또 움직일까요. 두 정치인의 어깨가 무거운 시점입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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