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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선정성의 일상화

입력
2015.03.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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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 SBS 제공.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 SBS 제공.

최근 서강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이 의아했던 것은, 여권이 신장되다 못해 역차별까지 거론되는 이 시대와의 괴리 때문이었다. ‘아이러브유방’이니 ‘작아도 만져방’이니 하는 숙소 방 이름과 선정적 춤추기 등이 성적 불쾌감을 준다는 데에 여지가 없었는데도, 왜 즉각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용납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학생회라는 조직도 있는 똑똑한 대학생들이, 초등학생부터 드센 여학생 좀 말려달라는 남학생 학부모들의 민원 아닌 민원이 빗발칠 정도로 자기 주장에 적극적인 여성의 시대에 말이다.

그러다 두 딸과 함께 TV를 보던 한 순간이 스쳐갔다.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재방송을 지난해 고등학생 초등학생 두 딸과 함께 보던 중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 남자 도민준(김수현)이 시간을 멈추고 스타 여배우 천송이(전지현)에게 입맞추는 장면이 나왔다. 곧 지구를 떠나야 할 운명이기에 좋아하는 감정을 감출 수밖에 없는 애절함을 표현한 장면이었고, 배우들의 매력과 아름다운 연출 덕분에 애절함은 극대화됐다.

아련하게 바라보다 일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 나는 다분히 교육적 의도를 품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허락도 안 받고 뭐 하는 짓이래? 저건 범죄야, 범죄!”

이런 말을 꺼낸 구체적 계기가 있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유럽의 여성들이 불편해 한다는 외신 기사를 읽은 일이다. (흔히 잘 생기고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남자 주인공이 (그 남자를 사로잡은) 여자 주인공의 팔을 낚아채거나 벽에 밀어붙이는 식으로 터프한 애정 표현을 하는 장면이 상대 여성의 의사를 무시한 폭력적인 관계로 받아들여진다는 기사였다. 어떤 문화에선 이거야말로 한국 드라마의 아찔한 매력이라며 열광하지만, 다른 맥락에선 불쾌감을 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 교육적 목표는 처참히 실패했다. “김수현이잖아!”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딸들의 반응에 나는 ‘꼰대 엄마’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 10대들의 한마디에서 그런 애정표현 정도는 용납하고도 남는 저 당당함과, 도대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김수현 같은 남자라면 내 의사쯤 묻지 않는 게 고마울 지경이라는 수동적 인식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을 나는 감지했다.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적극적으로 자기를 드러낼 줄 알게 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자기 몸에 대한 자신감이나 적극적인 애정표현의 수위가 곧 이성관계에서의 양성평등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경향은 안타깝다. 가장 중요한 전제인 상호 동의와 배려는 빠져있으니 균형이 안 맞는다. 이런 시각에서 서강대 성희롱 사건은 청춘남녀 사이의 재미난 장난거리, 웃어 넘기면 쿨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청소년층에 이런 불균형적 성 인식을 심어준 데에는 선정적이거나 전도된 가치를 담은 대중문화가 한몫을 하고 있다. 걸그룹들의 비키니 라인 핫팬츠와 '쩍벌춤'이 선정성 논란을 일으킨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걸그룹의 표준 패션처럼 돼 더 이상 논란도 되지 않는다. TV 드라마는 ‘별에서 온 그대’의 사례보다 훨씬 심한 온갖 관계를 시험하면서, 대수롭지도 않다. 제한된 상영관이 아닌 온 가족이 함께 보는 TV에서 버젓이 방영된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민망한 노출과 당당한 자기표현을 간혹 헷갈린다.

물론 하위 문화가 없는 사회는 없다. 하지만 하위 문화가 주류 문화를 장악하게끔 방치한 시대 또한 없었다. 표현의 다양성에 대한 허용범위는 넓어지더라도 하위 문화를 우리 사회의 준거로 삼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욕망과 감정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게 마련이나 그것을 표출하는 데에는 사회가 용인하는 한도가 있어야 한다. 그 극단적 층위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없다면 성과 표현의 자유는 분별없음으로 도치되고 만다.

김희원 문화부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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