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성 받들어서 청하옵는 저희 참가자들이 엎드려 부르나니, 울리히 벡 영가(靈駕)시여, 부처님의 위광을 따라 향단에 오시어 법공양을 받으소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전 뮌헨대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는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17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추도식을 열었다.
벡은 서구 중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경고한 저서 ‘위험사회’로 세계적 사회학자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한국의 비판적 사회학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는 등 한국과도 연을 맺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지난해 7월 방한 당시 참사를 계기로 한국에서 정치제도의 정당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리라 전망하면서 변화의 촉진제로서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에는 지난해 벡 교수와 대담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이건 전 서울시립대 총장, 세월호 희생자 유족 대표인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 등 생전 그와 연을 맺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당신은 세월호 참사의 자리를 시민이 시대를 학습하고 고쳐갈 자리로 만들어가라고 했다”며 “성찰적 시민, 위험을 증폭시키지 않는 삶의 방식, 문제해결을 위해 즐겁게 머리를 맞대는 협치의 시정이 한낱 수사적 언어가 아닌 우리 삶을 이끌 힘을 가진 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울리히 벡은 소수의 승리자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상황을 진단한 듯 방향을 제시하며 중요한 지침을 준다”며 “그의 표현대로 시민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안 되면 거칠게 도전해서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탈바꿈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추모의례는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의 집전으로 전통 불교의식으로 거행됐다. 명진 스님은 봉은사 주지이던 2008년 벡이 방한해 봉은사를 방문했을 당시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라는 뜻으로 ‘무애거사’(無碍居士)라는 호를 붙여줬다.
명진 스님은 “2008년 벡을 잠깐 봤지만 오랫동안 함께 도를 닦던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며 “서양인이면서도 너무나 불교적인 사유를 한 점이 감명 깊어서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떠났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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