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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의 미소, 왜 일본에서만 못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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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의 미소, 왜 일본에서만 못 볼까

입력
2015.03.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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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감독한 영화 언브로큰… 학대 용서한 美 포로 인류애 그렸지만

우익 "일본 폄하·인종차별" 매도… 50개국 개봉에도 日배급사 못 잡아

앤젤리나 졸리가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에서 자신이 감독을 맡은 영화 ‘언브로큰’ 포토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앤젤리나 졸리가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에서 자신이 감독을 맡은 영화 ‘언브로큰’ 포토콜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AP연합뉴스

“인기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을 맡은 영화 ‘언브로큰’(Unbroken)의 개봉을 놓고 일본 내 논쟁이 뜨겁다. 미국에서 흥행해 50개국 이상에 공개됐지만 우익들의 반대로 배급사 조차 잡지 못했다. 일본군의 포로학대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일본을 모독한 반일(反日) 영화’라며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전후 70년, 한 편의 영화가 일본에게 과거를 마주하는 방법을 묻고 있다’며 아사히(朝日)신문이 17일 게재한 기사의 일부분이다. 관련 논쟁이 작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아사히가 이를 재차 조명한 건 그만큼 개봉 반대운동에 대한 일본사회 내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폄하 영화다.’‘항의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자.’페이스북에는 ‘앤젤리나 졸리의 반일영화 저지하자’라는 제목을 내건 페이지에 1,200명 이상 참가해 연일 비판 글을 올리고 있다. ‘언브로큰’은 미국에서 작년 말부터 3,000개 이상 극장에서 상영돼 1억달러 이상의 입장 수익을 올렸다. 일본에선 작년 여름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인터넷 상에 공격이 시작됐다. 서명사이트‘Change.org’에선 졸리에게 보내는 상영반대 캠페인에 1만명이 동참했다. “도쿄극동군사재판의 사관을 바꾸지 않는 한 제2의 앤젤리나가 또 나타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극우적 역사인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지경이다.

포로를 학대한 일본군 상병으로 출연한 미야비(본명 이시하라ㆍ石原貴雅)에게 ‘매국노’라는 인신 공격도 쏟아지고 있다. 미야비의 아버지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자식은 조선인이다. 한국으로 강제송환하자’등의 주장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작품을 일본에 배급해온 도호토와(東寶東和)사에게는 전화공격이 쏟아졌다.

‘사실을 세계에 발신하는 모임’의 모기 히로미(茂木弘道) 사무국장은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미 결론을 단정지은 작품이어서 상영할 필요가 없다”며 “일본인 성악설에 근거한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 고문은 대표적 우익인 와타나베 쇼우이치(渡部昇一) 조치대(上智大) 명예교수다.

실제 영화를 본 사람들의 소감은 어떨까. 미국 뉴욕에 사는 영화감독 소다 카즈히로(想田和弘)씨는 “학대 장면이 긴데 비해 상병의 내면과 폭력의 남발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오늘날의 일본인이 감정이입하긴 어렵다”며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독일에서 공개될 수 없다면 세계가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일본 내에서의 상영반대 운동도 비판했다. 그는 “일본의 전후 과거사 반성 노력 자체에 불신을 안겨준다”며 상영저지운동을 경계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데이비드 맥닐 기자는 “영화를 보지도 않고 공격하는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언브로큰’은 2차대전 때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포로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루이 잠페리니(2014년 7월 사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원작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논픽션으로 폭격기가 태평양에 불시착하면서 일본군 포로가 된 잠페리니는 수용소에서 2년간 학대를 받는다. 죽도와 벨트로 학대당하고 포로끼리 주먹싸움도 강요당한다. 주인공은 전후 복수를 결심하지만 결국 ‘용서’하기로 마음을 가다듬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에서 80세의 성화주자로 ‘적국’을 찾게 된다.

유니버설픽처스 인터내셔널 던컨 클라크 사장은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담으려 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일본 개봉은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포로학대를 연기한 미야비는 “국경이나 인종의 벽을 넘어 잠페리니씨가 한 인간으로서 ‘용서’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생명의 힘, 고귀함을 영화를 보는 분들이 함께 공감한다며 내 소원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일본 내 상영을 희망했다.

하지만 ‘언브로큰’의 일본 개봉은 실현될지 부정적이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선 중국인 감독이 만든 ‘야스쿠니’(2007년)나 일본 어부들의 돌고래 학살을 고발한 영화 ‘더 코브’(2009년) 같은 일본의 부정적 모습을 담은 영화들이 줄줄이 우익들의 반대에 밀려 개봉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쿄=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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