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술관 플라토 ‘그림/그림자’전
풍경으로 이름난 중국 쑤저우(蘇州)의 고전원림(古典園林) 정원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광고판에는 “인민이, 오로지 인민이, 세계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다”라는 마오쩌둥의 글귀가 쓰여있다. 자연과 인공, 전통과 근대 사이의 괴리감을 풍기는 이 사진을 친구로부터 받아 중국 작가 리송송이 그린 그림이다. 여러 개의 알루미늄 철판으로 나뉘어 각 장마다 서로 다른 기법으로 그린 그의 기법은 원래 사진의 정치적인 느낌을 완화시키면서 괴리감을 심화시킨다. 회화의 독특한 매력이다.
1969년생 브라이언 캘빈부터 1981년생 빌헬름 사스날까지, 40세 안팎의 젊은 그림 작가 12명의 회화를 소개하는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 전시가 19일부터 서울 태평로2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다. 전시는 새롭게 주목할 현대회화의 흐름을 상상한 이미지를 그린 그림,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다시 그린 그림, 전통적인 풍경화와 정물화 등 세 가지로 나눴지만 이런 분류가 무색하게도 작가들의 독자적인 표현 기법과 발상이 눈에 띈다.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한 질리안 카네기의 작품은 직접 보지 않으면 매력을 확인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정물화나 풍경화를 그리지만 그가 쓰는 색은 오로지 검은색뿐이다. 가로 세로 2m의 ‘검은 사각형’은 얼핏 봐선 온통 검은색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물감의 거친 질감으로 묘사된 어두운 숲이 드러난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 백현진은 구체적 형태가 있는 자신의 그림 위에 추상적인 형태로 새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기존 작품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관심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옮겨갔음을 표현한 것이다. 백현진 작품의 건너편에 걸린 데이나 슈츠의 작품은 “신을 믿지 않는 작가가 상상해 그린 신”을 묘사했다. 사람들을 잔뜩 끌어안은 신의 얼굴은 비인간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기에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탐욕스럽고 관람객을 깔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과 컴퓨터그래픽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전통 회화는 과거의 유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이 전시회의 12명 작가들은 붓과 물감이 다시 작가만의 매력을 발휘하는 가장 독특한 수단임을 역설한다. 회화의 죽음은 새로운 회화의 탄생인 셈이다. 전시 6월 7일까지.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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