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시골밥상·엘리제궁 요리… 음식 영화들 조용한 관객몰이
시각적으로 관객 허기 자극… 적은 상영관 수에도 선전
지난 1월7일 개봉한 ‘아메리칸 셰프’는 이달 14일까지 극장가에 살아남았다. 덩치 큰 영화들이 대전을 펼치는 설 연휴 대목도 전국에서 20개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용케 버텼다. 두 달 넘게 장기 상영을 하며 모은 관객은 15만3,639명이다. 예술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흥행 성적이다.
‘아이언맨’ 1,2편의 메가폰을 잡았던 존 패브로가 주연과 연출, 각본, 제작을 도맡으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릿 조핸슨, 더스틴 호프먼 등 유명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킨 덕을 좀 봤지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음식의 향연도 빼놓아선 안 될 흥행 공신이다. 일류 음식점 요리사였던 캐스퍼(존 패브로)가 유명 음식평론가와 설전을 펼쳤다가 일자리를 잃은 뒤 절치부심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포스터를 채운 광고 문구부터가 아예 ‘빈 속으로 절대 보지 말 것’이다. 음식을 앞세운 시각효과가 관객들의 허기를 자극하며 흥행까지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메리칸 셰프’의 흥행은 텔레비전을 점령한 ‘먹방’과 ‘쿡방’이 스크린까지 진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는 일본 시골밥상에 초점을 맞춘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이 등장하며 스크린을 먹방으로 채웠다. “영화를 보면 배고프다” “음식이 연기를 한다”는 관객 평이 나올 정도로 음식에 집중한 영화다. 16일까지 7,982명이 관람했다. 10개 안팎의 적은 상영관 수에 비해 흥행성적이 좋다. 5월엔 속편인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도 개봉한다.
이 뿐 아니다. 이달만 따져도 ‘해피 해피 와이너리’가 12일 개봉한 데 이어 ‘엘리제궁의 요리사’가 19일 극장가를 찾는다. ‘해피 해피 와이너리’는 홋카이도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와인과 빵을 즐기는 세 남녀의 일상을 그린다. 2012년 개봉해 1만1,776명의 관객을 모으며 다양성영화 시장에서 화제를 모았던 ‘해피 해피 브레드’의 속편격이다. 15일 기준 2007명이 관람했으나 적은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를 감안하면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다.
프랑스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프랑스 대통령 집무시설에 머물며 여러 프랑스 가정식으로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 무명 요리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스코틀랜드 연어를 넣은 양배추요리와 루아르 당근’ ‘소고기 롤빵’ ‘허브를 얹은 아스파라거스 수프’ 등의 요리 과정과 완성된 음식을 등장시켜 관객의 눈과 혀를 자극한다. 눈을 통해 포만감을 느끼게 될 영화다.
음식영화의 상업적 잠재력은 2007년 이미 확인됐다. 허영만 작가의 동명만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식객’이 303만8,868명이나 모으며 침체 한파가 불던 충무로에 화롯불 역할을 했다. 같은 해 개봉한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은 예술영화 열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6,797명이라는 흥행 호성적을 남겼다. 1만명이 예술영화 흥행대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홍익대 인근 번화가에 영화에서 이름을 딴 식당이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먹방, 쿡방 영화의 확산은 방송의 영향이 크다. 당초 영화사들은 음식 관련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최근엔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메리칸 셰프’와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을 수입하고 배급하는 영화사 진진의 장선영 팀장은 “‘아메리칸 셰프’의 경우 연말연시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따스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음식 방송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선호가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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