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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오늘의 베토벤과 말러

입력
2015.03.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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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는 철학자이면서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다. 알반 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했고, 쇤베르크와 베토벤 등에 관한 책을 썼기에 클래식 음악은 배워서 습득한 지식이 아니라 수족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1938년 ‘음악에서의 물신적 성격과 듣기의 퇴행’이라는 유명한 글을 썼다. 나치 집권으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해에 나온 글이다. 악보만으로 음악을 떠올릴 수 있었고 연주자와 감상자를 날카롭게 구분하지 않아도 족했던 고급 취향의 소유자가 라디오, 영화 같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재즈와 바그너 풍 영화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 대중 문화를 만나 느낀 곤란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미국발 문화 충격에 당황한 유럽 지식인 아도르노는 음악이 산업으로 상품화되면서 오히려 듣는 능력은 퇴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기본 도식은 아도르노의 미묘한 입장을 떠나 당대의 문화를 비판하는 데 원용되곤 한다. 요즘 연주는 기교는 뛰어나지만 예전에 비해 진정성이 없고, 최근 오디오 기기는 해상도만 좋지 음악성이 없다는 상투적인 말과 함께.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유럽 몇몇 주요 작곡가의 작품을 주력으로 삼는 클래식 음악의 특성상, 최근의 연주는 과거의 연주와 비교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엘피-시디-디지털로 이어지는 음원의 변화와 오디오-워크맨-모바일기기로 바뀐 기기의 변천은 감상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클래식 음악사이트나 오디오 기기 게시판에는 과거의 거장과 최근 연주자의 연주를 놓고, 또 엘피와 디지털 음원 중 어느 소리가 나은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 일쑤다.

결론은 대개 ‘취향 존중’이라는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쪽으로 나곤 한다. 최근 연주가 옛 거장의 아우라를 이기기는 무척 버겁다.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익숙해진 레퍼토리를 새롭게 들리게 하기란 어렵다.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 클라이버 등의 베토벤 교향곡 5번에 도전하는 이들의 노력과 성과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는다. 처음 이 곡을 진지하게 들어보려는 이들도 안전한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같은 곡을 계속해서 사서 듣는 열성 팬이 아니라면 새 연주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이 딜레마는 클래식 음반 산업의 몰락의 중요한 원인이다.

한편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한 전축이 부를 상징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디오는 대형 평면TV에 상석을 내주고 사라진 지 오래다. 옛 거장을 향한 향수는 엘피의 물신화를 낳는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상품에 대한 희귀성까지 더해져 중고 엘피 가격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 디지털 음원과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조금만 노력만 기울이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실황 공연을 거의 실시간으로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다.

매체의 변화에 맞추어 대차대조표를 다시 짜야 한다. 음악과 오디오 기기의 물신적 성격은 더 강화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음반이 문화의 중추였고 오디오가 산업의 블루칩이던 시절에 눈과 귀를 고정해두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를 죽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더 이상 빼어난 연주는 나오지 않을 것 같던 곡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들이 있다. 아직 많은 작곡가들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단연코 어떤 작곡가들도 자신의 작품이 지금처럼 탁월히 연주되는 모습을 상상 조차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이 표준 레퍼토리가 된 것은 번스타인 같은 이들의 덕이지만, 이제는 마르커스 슈텐츠나 조너선 노트 같은 지휘자들과 함께 말러의 새 지평을 향유할 때다.

엘피로 번스타인을 듣는 일도 근사하지만 고해상도 음원으로 새로운 해석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의 유산이 보수적인 취향의 오락으로 머물지 않고 당대와 호흡할 수 있는 길이다. 오늘날의 바흐, 베토벤과 말러를 찾자. 베토벤과 말러 역시 당대의 혁명가 아니었던가.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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