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고] 일제식 진단평가의 허점

입력
2015.03.17 13:52
0 0

몇 해 전 교과 전담교사를 할 때 이야기입니다. 제가 수업을 맡던 반 중에 눈에 띄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외모에 관심이 많고 꾸미는 일에 열중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쩌다 그 학생의 이야기가 나오면 담임은 그렇게 꾸미고 인근의 큰 도심지로 놀러 다니는 일이며, 옷차림이며, 때로는 밤에 늦게 들어가는 일도 있는 등 걱정과 더불어 타박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 반이 학급 야영을 할 때였습니다. 몇 가지의 활동을 마치고 저녁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몇 분의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서툰 솜씨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중에 그 여학생이 또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재료를 다듬고 조리도구를 사용하는 게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모둠의 재료를 다 다듬고 나서는 다른 모둠에 기웃거리며 서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칼을 들고는 볶음밥에 들어갈 채소를 아주 능숙한 솜씨로 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 모둠 저 모둠에 도움을 주던 그 여학생의 모습에 그 반 담임선생님과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을 하시는 엄마 대신 가사 일을 많이 한다는 것과 엄마가 하시는 피부관리 일을 보아와서 외모와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좋지 않게 보이는 단면에 가려져서 그 동안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면들이 그날 이후에 새롭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일제식 진단평가와 위의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 여학생이 외모에 관심이 많고 꾸미는 일에 열중하는 단면만을 봤으면 그냥 그런 아이였을 것입니다. 음식 만드는 일을 가정주부에 버금갈 정도로 능숙히 해내는 모습이나 다른 친구들을 돕는 모습, 매사에 성실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담임선생님이나 저나 일종의 편견이 있었던 것이죠.

일제식 진단평가는 어느 학생의 학업성취나 목표 도달 정도를 빠르고 간편하게 알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다형과 단답형의 시험으로는 굉장히 단편적인 면들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일제식 진단평가로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낙인효과’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거기에 가려져서 그 학생의 다른 여러 면들을 보는 것을 방해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성적이 좋지 못해서 기초학력 부진 학생으로 판별되는 학생이 있으면 지도를 해서 학년 말에 기초학력 부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을 교사 성과급과 학교평가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학년 초에 기초학력 부진아로 판별되는 학생들이 있으면, 학년 말에 구제가 되도록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진단평가 문항을 CD 자료로 배포하고 학교에서 시험을 보도록 안내를 했습니다. 물론 각 학교에서 선택해서 볼 수 있지만, 공문상의 모호함과 여러 복잡한 절차로 인해 교육청에서 배부한 자료로 실시하는 학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며칠 전 경기도 교육청에서 배포한 자료로 진단평가를 실시한 경우 기초학력 부진학생을 ‘온라인 기초학력 진단 보정 시스템 등록’하고 ‘미도달 학생에 대한 심층 진단과 지도계획 수립 제출’하라는 안내 공문이 새로 왔습니다. 이 역시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하지만 일선학교에서는 의무사항처럼 적용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몇 해 전까지 하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온라인에 등록까지 하라는 것은 제대로 ‘낙인효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됩니다.

우리 학년은 여러 차례 논의를 통해서 진단평가를 선생님들이 출제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각 학급에서 참고용으로만 사용할 예정입니다.

최근 들어 학교에서 평가의 방법이 상시 평가체제로 바뀌어 학습과정 전반에 걸쳐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교육부나 도 교육청에서는 그 취지에 부합하도록 진단평가 역시 다양하고 의미 있는 활동들을 통해 각각의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활용은 각 담임 및 담당교사의 판단에 의해서라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천명우 경기도 H초등학교 교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