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된 경찰 여성청소년 통합수사팀, 부서 벽 허물고 시너지 기대했건만
형사들 업무 늘고 전문성 떨어져, 자체 예산 없고 112단말기도 부족
"4대악 척결 속도에 희생" 현장 불만
10일 오후 10시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 사무실. 성폭력 사건 현장에 출동했다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던 A경위는 “가정폭력과 실종신고까지 하루에 처리하는 사건이 10건씩은 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단순히 신고 건수가 증가한 것만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성폭력 수사만 전담하다 갑자기 팀이 통합되면서 가정폭력, 실종사건까지 동시에 맡다 보니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A경위의 불만이었다.
일선 경찰서에 신설된 여성청소년수사팀 경찰관들이 녹초가 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달 4일 150개 일선서에 성ㆍ학교ㆍ가정폭력, 실종 등 여성청소년 관련 분야를 한데 아우른 통합수사팀을 발족했다. 각 업무 특성상 유기적 협조가 필수적인데도 업무가 분장돼 있어 수사 효율과 사후 관리가 원활치 않다는 반성에서 신설한 팀이다. 이에 따라 기존 형사과에서 맡았던 가정폭력과 실종 사건 처리가 여성청소년과로 넘어왔다. 경찰청은 당시 통합수사팀이 출범해도 전체 정원대비 380여명 정도만 부족해 업무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난 현재 경찰청의 공언과 달리 현장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일선 형사들은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성폭력ㆍ실종 사건이 발생하면 2년 전 만든 성폭력수사팀과 2008년부터 운영돼 온 실종수사팀이 각각 수사를 전담했는데, 지금은 3,4개 여성청소년수사팀이 돌아가면서 일괄 처리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16일 “발생 사건이 들어올 때마다 그 날 당직팀이 맡아 처리하다 보니 성폭력ㆍ실종전담 수사팀이 있을 때보다 사건 특성에 맞춘 세분화한 대응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예산이 따로 배정된 것도 아니다. 지난해 10월 처음 개편안을 마련해 4개월 만에 조직을 출범시키느라 올해 경찰 예산안에는 여성청소년팀 예산이 일절 반영되지 못했다. 경찰청은 급한 대로 형사과에 배정돼 있던 예산을 끌어와 수사비와 비품구입비 등에 사용하고 있지만 필요 장비는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예컨대 가정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지구대원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 초동조치를 하도록 돼 있는데 현장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리는 112단말기가 지급이 안 된 곳이 많다. 또 일부 여성청소년수사팀의 경우 가정폭력 피의자를 조사할 공간이 여의치 않아 형사당직팀의 조사실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수사 현장에서는 경찰 수뇌부가 ‘4대악 척결’ 실적에 속도를 내기 위해 통합수사팀 설치를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세밀한 사전 지원 계획 없이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대외적으로 민감한 수사 기능을 한곳에 떠넘겨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청은 부서 신설에 따른 일시적 부작용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뿐 아니라 예방, 사후관리까지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총괄할 예정이라 시간이 지나 정착이 되면 기능을 통합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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