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이슈를 자기만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대중음악평론가 미묘(필명)의 칼럼을 신설합니다. 2012년 데뷔 앨범을 낸 일렉트로닉 음악가, 웹진 아이돌로지의 편집장이자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학 박사과정 중인 미묘가 격주 화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청순하거나. 걸그룹은 뻔하다. 가장 대중적인 여성상을 선보이는 장르다. 남자들을 유혹하는 게 핵심이고 섹시 콘셉트는 날로 수위를 높인다. 하지만 최근 우리 가요계는 이런 통념에 제동을 걸 만한 두 장의 음반을 만났다.
하나는 포미닛의 ‘미쳐’다. 멤버들은 농담처럼 “남성 팬은 포기했다”고 말한다. 눌러쓴 모자 밑으로 치켜 뜬 눈빛에, 입술은 흑백으로 검게 물든 채 이를 드러내며 일그러진다. 엉덩이를 흔드는 안무조차 무심하고 얄밉게 연출됐다. 후렴의 랩은 팬들이 “한 대 맞을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섹스 어필을 지워버렸다면 차라리 무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은 뻔한 유혹의 수단들을 일부러 보여주면서 이를 뒤튼다. ‘안전하게 즐길 생각 마라’는 공격적인 섹시함이다.
이 곡의 후렴은 무대에서 멤버들의 존재감이 채워야 할 커다란 빈 자리로 이뤄졌다. 주로 남성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던 이런 구조는 포미닛의 강력한 무대 장악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삼촌 팬’이 부상하면서 여성 아이돌은 ‘우상’에서 관객과 ‘놀아주는’ 소녀들로 자리를 옮겨왔다. 지금 포미닛은 그런 구애를 포기하고 관객을 압도하려 하고 있다.
또 하나는 엠버의 미니앨범 ‘뷰티풀’이다. 엉뚱한 콘셉트의 걸그룹 에프엑스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던 그다. 남자 같은 차림으로 멤버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은 때로 동성애적 긴장을 느끼게 했다. 씩씩하고 쾌활한 성격마저도 차라리 소년이었다. 그런 그의 솔로 데뷔작은 외모로 인해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상처에 관해 노래한다.
그러나 편안하게 힘을 뺀 소년 같은 목소리는 동정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타이틀곡 ‘셰이크 댓 브래스’에서 소녀시대 태연과 짝을 이뤄 남자 역할을 해내며, 성 정체성에 대한 대중의 의심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태연함까지 보인다. 그는 상처를 극복했다고 말하진 않지만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적 성 역할 앞에서 슬쩍 웃어 보인다. 자신의 다름이 전혀 큰일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 차라리 차분한 도발이다.
포미닛과 엠버는, 연예계에서도 가장 상업적인 아이돌이 인디 음악보다 급진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역설적으로 이는 아이돌이라서 가능하다. 지나치게 섹시해서 탈이었던 포미닛은 남성을 외면하면서도 충분히 섹시하고, 엠버는 별난 취향으로 번쩍이던 K팝 붐 속에서 부상했다. 아이돌이 캐릭터로 소비되는 경향을 바탕으로, 이들은 각각 ‘스스로 섹시한 사람’ ‘조금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입고 성적 대상화를 벗어나고 있다. 이 두 음반은 보수적인 여성상에 대해 항변하는 동시에, 아이돌 산업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아이돌이란 무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전법이 사용된 결과다. 그 결과 바야흐로 아이돌이 급진적인 시대이다.
미묘ㆍ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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