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재생’이 화두다. 한국일보 지역면에선 최근 한달 여 지방자치경영대전에서 수상한 28명의 자치단체장들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고 포부를 펼칠 수 있는 이 코너에서 올해 수상 지자체장들의 절반 이상이 내세운 주제는 도시재생이었다.
뉴타운 사업 등 전면철거 방식의 재개발 사업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포스트 개발 시대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한 것이 도시재생이다. 단기적인 수익을 위한 재개발, 재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모델이다.
도시재생은 재개발과 달리 주민과 공공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프트웨어도 함께 개발한다는 점에서 기존 정비사업보다 진일보한 방식이라는 데엔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너나없이 도시재생이 절대선인양 추진하고 있는 데서 왠지 불안감이 든다. 달동네 하나가 벽화로 이름이 난 뒤 전국의 수많은 달동네들이 죄다 벽화마을이 된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도시재생이 진행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 도시재생은 공간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담으며 세심하고 정교하게 진행돼야 하는 데 재개발, 재건축처럼 너무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서울형 도시재생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민선 6기의 핵심과제 중 하나인 도시재생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이다. 시는 27곳의 선도지역을 선정해 집중적인 도시재생을 추진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27개 지역을 동시에 재생하는 것은 벅찬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돈의 논리로 진행되는 사업이라 유인책만 있다면 저절로 돌아가지만 도시재생은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이다. 하나하나 공공이 참여해 주민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선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것이 도시재생이다.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도시재생에서 조급증은 독이 될 수 있다.
시가 발표한 27곳의 선도지역 중에는 뜬금없어 보이는 곳들도 있다. 노들섬 조성, 창동ㆍ상계 일대 개발, 코엑스-잠실운동장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 상암DMC 수색서북권 창조경제 거점 육성 등은 세운상가나 마포석유비축기지 개발, 성곽마을 보전 등과는 그 결을 달리하는 사업으로 도시재생이란 단어와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재생보다는 갈아엎기가 어울리는 이 사업들을 굳이 도시재생에 끼워 넣은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영동MICE 국제교류복합지구의 경우엔 다른 도시재생 사업지구에서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는 사업이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10조원 넘는 돈을 주고 인수해 100층 넘는 빌딩을 올리려는 이곳에 서울시는 일반주거지역을 상업지구로 용적률을 높여주는 데 이어 이 일대 올림픽대로를 지하화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공원까지 만들어줄 계획이라고 한다. 달동네의 골목을 보전하는 것과 화려한 강남 땅에 100층 넘는 마천루를 세우는 것을 굳이 도시재생이라며 같이 묶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27곳의 동시 개발은 수십 년간 유럽과 미국의 선진 도시들이 이뤄낸 결과물을 그대로 베껴 압축적 도시재생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에겐 단기간에 초고속 도시개발을 이뤄낸 역사가 있지만 도시재생은 다른 분야다.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시 전체를 재생하겠다고 밀어붙이다가는 불과 얼마 전 뉴타운을 시 전체로 확대했다가 맞았던 참담한 실패를 답습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 10여 년 서울의 북촌 삼청동 서촌에서 일어난 큰 변화에 많은 이들이 씁쓰레하고 있다. 조용히 살던 동네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만 급등했다. 살던 주민들은 쫓겨나고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엔 구경꾼만 넘치고 있다.
켜켜이 시간이 쌓인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재생사업은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발굴하듯 세밀함이 전제돼야 한다. 도시를 재생한다고 나섰다가 어설픈 덧칠로 도시의 흔적을 지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사업이 단체장들의 과시욕에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전락해선 안 되기에 하는 소리다.
이성원 사회부 차장대우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