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차고 8년째 쪽방촌 봉사… 제2의 인생 자활 의지 북돋아
“첫 월급 받고는 후회도 됐지만 이제는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인근 높다란 빌딩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빌딩 숲에 감춰져 있는 쪽방촌과 금새라도 무너질 듯 보이는 공장 단지 사이의 한 건물에 ‘옹달샘’이라는 파란색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 역시 허름하다 못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밖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열렸다. 잘 정돈된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분주히 전화통화를 하거나 일대일 상담을 하고 있었고 깨끗하게 청소된 방에는 십 수명의 남성들이 막 세면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곳은 거리 노숙인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노숙인 보호시설 ‘옹달샘’. 지난 2007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했다는 김동혁(41) 행정실장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회상하며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으로는 이런 곳에서 일해서 과연 내가 월급이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월급 걱정부터 했던 김 실장이 옹달샘에서 노숙인들의 손과 발이 돼 준지 올해로 8년째다. 김 실장은 한때 잘 나가던 중견기업 회사원이었다. 사회복지사인 부인을 따라 봉사활동을 다니다 복지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급기야 직장을 그만 두고 전문 사회복지사로 나섰다.
“전 직장에서는 월급이 500만원 정도였는데 옹달샘에서 처음 받은 월급이 130만원이었어요. 이 월급 가지고 살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벌써 8년째네요. 이젠 사회복지사 일을 떠나서는 살수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여기 그만 두면 곧바로 노숙인이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요. 하하하.”
그가 옹달샘에서 하는 일은 노숙인들의 노숙 탈출을 돕는 도우미 역할이다. 노숙을 탈출하겠다고 어렵게 마음을 먹은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거나 주민등록 복원, 신용회복, 의료지원 등 한 명, 한 명에 맞게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옹달샘에 드나드는 노숙인은 하루 150여명. 그들 중 다수는 옹달샘에서 지급되는 식사와 따뜻한 잠잘 곳만이 목적이지만 일부는 옹달샘의 지원을 받아 사회로 복귀하는데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옹달샘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본인의 신분을 밝혀야 하고 음주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김 실장은 옹달샘에 들어온 노숙인들은 모두 노숙탈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고 있다.
옹달샘 직원들은 그 중에서도 사회 복귀 의지가 강한 노숙인들을 골라 집중 지원하고 있다. 특히 단기월세 지원은 노숙 탈출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시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거리 노숙인 517명에게 최대 6개월까지 단기 월세를 지원한 결과 82.2%에 해당하는 425명이 주거지원 종료 후 사회로 복귀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길이 아닌 자신의 방이란 공간을 다시 경험하면서 노숙을 벗어나고픈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되는 것이다.
단기월세 지원을 받은 노숙자 가운데 90% 가량이 노숙생활을 벗어났다. 2012년부터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숙하던 김모(46)씨는 옹달샘에서 노숙인 특별자활근로사업과 자격증 취득 지원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6월부터는 단기월세 지원을 받으면서 버스운전면허를 취득해 지금은 어엿한 버스운전기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 다른 노숙인 김모씨는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옹달샘에서 과거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노숙인들을 돕고 있다. 고교 중퇴인 그는 옹달샘 지원으로 대학까지 다니며 현재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 실장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노숙인 도우미를 계속하는 이유를 “보람”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끔 노숙인들이 ‘우리 때문에 김 실장도 월급 받고 산다’고 농담하면 제발 우리 잘려도 좋으니 빨리 나가기나 하라고 답하며 웃죠. 그런데 정말 그들이 노숙 탈출하면 정말 뿌듯해요. 그들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간 후 간혹 새해 문자 인사라도 보내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럴 때마다 영영 이 일 그만 두지 못하겠구나 생각하죠.”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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