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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광신도들

입력
2015.03.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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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십대 후반의 한국인이 터키 국경을 넘어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겨졌던 중동의 분쟁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현실과 접속되는 순간이었다.

중동 지역에 기반을 둔 무장단체들 중 일개 분파에 불과했던 IS가 한국인을 포섭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 것은 불과 최근 1, 2년 사이의 일이다. 그들은 근본주의 이슬람교를 사상적 기반이자 통치질서로 삼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자신들을 알리는 방식은 거리낌이 없고, 급기야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유혹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마땅히 기댈 곳이 없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엄격한 종교적 세계관과 금전적 만족(IS는 포섭된 외국인들에게 월800달러를 지급한다고 알려져 있다)을 동시에 주는 IS는 큰 매력으로 느껴질 만하다.

그것을 증거하듯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젊은이들이 IS로 향하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근본주의 종교의 세계로 향하는 젊은이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종교로부터, 나아가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이상으로 삼는 자유주의 세계관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유주의는 신 대신 돈을 토대로 삼는다. 배금주의라는 뜻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불황과 양극화에 따라 사람들은 그 세계관에 동의해야 할 근거를 잃고 있다. 어떤 사상의 근거가 흔들릴 때, 그 사상 또한 신용을 잃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상을 열정적으로 신봉함으로써 그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복음주의자들이 나타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영국의 철학자 존 그레이는 한 인터뷰에서, 현재 유행하는 무신론은 미디어에 국한된 현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오히려 종교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최근 서구 미디어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소수자 인권옹호 등의 자유주의적인 움직임은, 그 선정성과 단순성에 비춰볼 때 수세에 몰린 어떤 이념의 신앙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식 호황을 경험한 기억도 없으며, 당장 팍팍한 현실에 내던져진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복음은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질 뿐이지 않을까.

터키로 향한 김군이 증오의 대상으로 페미니즘을 거론한 것은 따라서 엉뚱한 것이 아니다. 그가 증오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내용이 아니라, 페미니즘으로 상징되는 무능하고 타락한 옛 세계관이다. 일베가 민주화 등의 가치를 조롱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의 눈에는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기성세대야말로 시효가 지난 시대의 이념을 설파하고 다니는 비이성적인 광신도들인 것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진짜 신도로 거듭나는 것이 이성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이슬람 문명의 서구적 가치에 대한 공격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시각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한 물 간 주간지였고, 테러범들은 프랑스에서 자라난 프랑스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유주의적 가치의 현실적 무능함에 절망하여 그 대안으로서 근본주의 종교를 택한 것이다. 물론 그것의 결과는 끔찍한 비극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다른 정치적 대안이 있었다면 그것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만든 바 없다. 남은 것은 맹목적인 믿음뿐이다.

옛 것은 사라졌는데, 새것은 오지 않았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의 바닥이 무너져 내린 허공과 같은 세계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세상은 이미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종교화 되어버린 것 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각자의 신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신을 배척하며, 서로가 서로를 광신도들이라 비웃는다.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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