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27개 섬 보건지소에만 근무, X레이·혈액검사 정도만 가능
취약지역 의료인력 확보 절실한데 공중보건의 숫자 오히려 감소
거리·기상 제약 많은 닥터헬기 등 환자 이송 시스템도 문제
해경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가거도는 국토 최서남단인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섬으로 전형적인 의료취약지다. 위급한 환자가 발생해도 큰 병원이 있는 목포까지 가려면 쾌속선으로 4~5시간이 걸린다. 490여명의 주민들은 민간 의료인력 배치를 요구했지만, 2012년 4월에야 관광객 급증으로 응급환자가 늘면서 공중보건의 2명이 배치됐다. 그러나 가거도 보건지소는 X레이와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기초 장비만 갖춘 상태로, 일곱살 맹장염 환자를 수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거도 보건지소 관계자는 “섬 진료소 여건상 심장 질환 등의 진단 장비가 전혀 없어 확진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서 “수술 등 긴급 조치가 필요할 경우에는 호송 요청을 한다”고 말했다.
가거도처럼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 및 도서 벽지 의료시스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배나 헬기를 이용해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섬 지역의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 전남 지역의 경우 주민이 살고 있는 섬은 모두 296 곳이지만,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 등이 설치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섬은 96곳뿐이다. ‘공중보건의 운영지침’은 보건지소까지만 공중보건의를 배치하도록 돼 있어, 그나마 보건지소가 있는 27개 섬에만 의사가 있다. 나머지 69곳의 보건진료소에는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 중 보건진료소 운영에 필요한 직무교육을 6개월 간 수료한 ‘보건진료원’ 1명이 근무해 사실상 응급상황에 속수무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의료취약 지역의 의료 인력 확보가 절실하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농어촌 벽지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큰 몫을 해 온 공중보건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2009년 약 5,300명이던 공중보건의는 현재 3,500명 정도로 줄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대의 여학생 증가 등의 이유로 공중보건의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며 “절대적인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현재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남학생 비율은 40%대이며, 의학ㆍ치의학전문대학원에도 군복무를 마친 학생이 3분의 1이나 돼 공중보건의 인력은 갈수록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 자격을 가진 남성들이 현역 군복무를 대신해 농어촌 도서지역 등의 보건소, 특수병원, 지방의료원 등에 배치돼 근무하고 있으나, 섬 지역은 여건이 열악해 통상 1년 정도 근무한 뒤 육지나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 전남도 관계자는 “본인이 원해서 3년 근무하지 않는 한 1년씩 교대 근무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료 인력 확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3일 ‘공공보건의료인력의 현황과 문제점, 역량강화 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의료정책포럼에서 서울대 의대 이종구 교수는 “공중보건의사제도에 기대지 말고 취약지역의 안정적인 의사인력 확보방안을 다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섬 등 의료 취약지역은 환자 이송 시스템이라도 제대로 갖춰야 하지만 이 또한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부처간 협의를 통해 응급 환자 이송시 2011년 복지부가 도입한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를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상황에 따라 119 구급대에서 헬기를 연결해주는 내용의 헬기 공동 활용지침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인천(가천대길병원), 전남(목포한국병원), 강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안동병원), 충남(단국대병원)을 닥터헬기 운영지역으로 선정, 충남을 제외한 4개 지역에 닥터헬기를 배치해 운영 중이나 소형인데다 야간 또는 기상악화 시 활용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번 가거도 맹장염 환자 이송 때도 목포한국병원의 닥터헬기는 거리와 기상 등의 이유로 운항 지역에서 제외돼 활용하지 못했다. 2차로 전남소방본부 헬기가 고려됐으나 기상악화 등을 이유로 출항하지 못했고, 결국 해경이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구기자 sori@hk.co.kr
신안=박경우기자 gwpark@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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