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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3국 에볼라 후폭풍…GDP 최소 12%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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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3국 에볼라 후폭풍…GDP 최소 12% 급감

입력
2015.03.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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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못 챙기는 기니인 100만명, 1만5000톤 식량원조도 역부족

에볼라 낙인에 피폐해진 삶, 일자리 잃거나 배척당하는 생존자

에볼라 예방 16억달러면 가능했는데, 발병 뒤 구호나서 43억달러나 사용

에볼라에 3명의 자녀를 잃고 본인도 감염됐다 지난 5일 퇴원한 라이베리아의 마지막 에볼라 환자 베아트리스 야르돌로(58)가 몬로비아 페인스빌에 있는 치료센터를 의료진과 함께 나서고 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에볼라에 3명의 자녀를 잃고 본인도 감염됐다 지난 5일 퇴원한 라이베리아의 마지막 에볼라 환자 베아트리스 야르돌로(58)가 몬로비아 페인스빌에 있는 치료센터를 의료진과 함께 나서고 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에볼라 바이러스 최대 피해국인 라이베리아에서 지난 3일 마지막 환자가 완치돼 퇴원했다. 영어 교사인 베아트리스 야르돌로(58)는 이날 치료센터를 나오면서 “상황을 어렵게 극복하고 살아 나왔기에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며 기뻐했다. 라이베리아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에 따라 최대 잠복기인 42일 안에 추가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에볼라 해방국이 된다.

세계가 올 들어 에볼라 악몽에서 점차 깨어나는 듯 하다. WHO에 따르면 8일 현재 에볼라 감염자는 2만4,282명이고 사망자는 1만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신규 감염이 주당 900건에 이르던 초기와는 달리 100건 내외로 줄어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에볼라 퇴치 지원을 위해 서아프리카에 파견했던 2,900명 규모의 병력을 올 4월 말까지 철수할 계획이다.

하지만 에볼라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상처는 깊다. 바이러스에 시달렸던 국가들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남겨진 유가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번 에볼라 사태의 최초 감염자로 알려진 두 살배기 기니 남아 에밀 오우아모우노의 아버지는 “좌절만이 이 나라를 채우고 있다”며 “기니는 농업 지원과 학교, 교회, 진료소 등 기반 시설 확대가 절실하다”고 3일 로이터통신에 호소했다.

GDP 최소 12% 감소하는 등 경제 큰 타격

세계은행은 서아프리카 에볼라 창궐 3개국, 라이베리아 기니 시에라리온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최소 1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에볼라 확산 이전에 이들 국가의 합산 GDP는 130억달러(약 14조6,471억원)로 아프가니스탄보다 소폭 적은 수준이었지만, 에볼라 사태 이후 다른 최빈국들과 큰 격차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서아프리카의 곡창지대였던 기니의 경제는 에볼라 진원이란 오명 탓에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에볼라는 농산물로 감염되지 않지만 주변국은 노파심에 이 지역 농산물 수입을 극히 꺼린다. 장 뤽 시블롯 유엔식량계획(WFP) 응급부문장은 “기니의 작물 유통량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기니와 물자 교류를 원하지 않는 아이보리코스트와 라이베리아, 말리 등이 접경지역을 폐쇄했기 때문”이라고 로이터통신에 설명했다. 유통이 마비되자 시장이 폐쇄되면서 식량 가격도 40% 이상 폭등했다. 하루 1달러 미만을 갖고 사는 주민들은 27센트나 하는 쌀 한 컵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각종 경제 분야가 타격을 입자 일자리도 바닥났다. WFP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2월 이후 에볼라로 발생한 실업자는 기니에서만 10만명. 특히 에밀이 살던 남동부 삼림지역 인근 마을 사람들 중 91%나 일자리가 전무한 상황이다.

상황이 점차 열악해지며 삼시세끼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기니인은 100만명에 이르게 됐다. 이들은 식료품을 사려고 가구나 옷가지, 심지어 땅까지 팔고 있다. WFP는 마센타와 게테두, 키시두구 등 기니의 삼림지대 내 55만 인구를 위해 총 1만5,000톤의 식량을 원조했지만 급증하는 빈곤 인구를 지탱하기엔 역부족인 실정이다.

에볼라 이후의 삶에도 고통 극심

에볼라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수만명 고아의 생계 또한 큰 문제다. 영국 소재 자선재단 스트리트차일드에 따르면 에볼라 확산으로 시에라리온에서만 1만2,000명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아홉살. 에볼라 낙인 탓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을 비롯해 생계를 이어가려고 성매매에 투신하는 소녀들도 다수다. 시에라리온 내 학교는 이달 30일 수업을 재개할 예정이지만 아이들은 살림 부담 때문에 쉽사리 학교 갈 생각을 못한다.

시에라리온에서 발생한 고아들 중 어른의 돌봄을 받고 있는 비율은 17% 남짓이다. 게다가 이들마저도 성인 1명당 아이 5명 이상을 맡아 돌보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알하지 모이주에 카이카이 시에라리온 복지장관은 “에볼라로 부모와 친척을 잃은 아이들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며 “남겨진 아이들을 돌볼 봉사자나 시설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기적’이라 불렸던 에볼라 생존자들의 삶 역시 희망적이지 않다. 이들은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지만 일자리를 잃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는 등 에볼라 이후의 삶은 죽음만큼 공포스럽다. 에볼라에서 완치된 라이베리아 여성 시아니 베얀은 “에볼라는 모든 것을 바꿔놨다”며 “가족도 친구도 그 어떤 사람도 날 도와주지 않지만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밖으로 나서야만 한다”고 토로했다고 BBC는 3일 전했다.

몇몇은 완치 후에도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내 두 번째 에볼라 감염자였던 간호사 니나팸은 완치 후에도 신체 통증이나 탈모 등 증상을 겪고 있고, 일부 환자들은 신경통을 앓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미 조지타운대 메디컬센터의 제스 굿맨 박사는 “에볼라 완치 후에도 안구 등 극소 부위에 바이러스가 남아있을 수 있다”며 “에볼라 영향력에 관해 충분히 연구된 게 아니기 때문에 감염자뿐 아니라 생존자의 후유증까지도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대응 실패가 사태 키워

에볼라가 이처럼 창궐한 원인에 대해 많은 가설들이 제기되지만 각국 정부와 단체들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중론이다. WHO는 지난 1월 “우리 눈 앞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며 “에볼라가 끼칠 영향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에볼라 사태 발생 전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는 10만명당 의사 수가 1,2명에 불과했고, 국민 한 명당 의료 시스템에 지출하는 비용은 300달러 이하였다. 스페인이 3,000달러를 지출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여기에 에볼라 사태 초기 국제사회가 유엔에 약속한 지원금 49억달러 모금이 지체되고 24억달러 모금에 그치면서 구호 활동에도 지장이 생겼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3일 보고서를 통해 “애초 16억달러(약 1조7,000억원)면 에볼라 피해지역에 전염병을 예방할 보건 체계를 세울 수 있었으나 발병 뒤에야 구호활동을 펼치면서 43억달러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라이베리아보다 보건 체계 수준이 낮은 국가는 28곳에 달한다”며 “제2 에볼라 발병을 막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기초 보건 체계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방 위주 의료체계 구축해야

국제사회가 ‘에볼라 이후의 지구촌’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3일 서아프리카 3국 대통령을 포함한 전세계 69개국 대표와 유엔 등 국제기구 관계자 600명은 에볼라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에볼라 피해국의 경제 회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엘렌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국제사회가 힘을 합해 서아프리카 3개국의 재건 비용을 마련하자는 골자의 ‘마셜 플랜’을 제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너진 유럽 경제를 도운 미국의 구호 프로그램을 본 딴 구상으로,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아프리카연합(AU)에 제안하면서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초 서아프리카 3개국에 대한 구제금융 1억달러를 조성했고 원조성격의 양허성 차관 1억6,000만달러도 준비 중이다. IMF는 또 세계은행과 오는 4월 워싱턴에서 에볼라 대책 회의를 개최할 방침이다.

하지만 핵심 문제로 지적된 예방적 차원의 의료 체계 구축은 여전히 더딘 상태다. WHO가 캐나다 보건당국이 개발한 에볼라 백신에 대한 2단계 임상실험을 지난 7일부터 기니에서 시행하긴 했지만 올 8월에서야 대규모 사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에볼라뿐 아니라 사스와 신종플루 등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잇따라 대규모 피해를 입었음에도, 전염병 예방 체계를 갖추는 데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한 피터 파이엇 영국 보건대학원장은 세이브더칠드런 보고서를 통해 “에볼라가 우리에게 준 한가지 교훈은 세계가 이 같은 의료 체계를 지속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라며 “지금은 에볼라가 남긴 것들을 속히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라고 역설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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