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미 ‘산수&여성을 위한 진혼’전
전시실 바닥에 한국 전통의 오방색 종이꽃이 흩어져 있다.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 청ㆍ백ㆍ적ㆍ흑ㆍ황색 종이꽃이다. 저 세상에서라도 행복하라는 진혼의 의미다. 위로받는 넋은 명성황후. 옆에 도열한 부처와 보살들도 모두 여성이다. 명성황후는 경주의 석굴암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배치된 이 전시장에서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부처로 새롭게 태어났다.
한지와 모시, 삼베 등 전통 재료를 사용하는 정종미 작가가 고려대 박물관에서 개인전 ‘산수 & 여성을 위한 진혼’을 열고 있다. 전통 소재로 한국 여성을 묘사한 ‘종이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천연염료를 수십번씩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레 전근대 여성의 가내수공업을 연결짓는 그는 “과거 여성들이 사용해 왔던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작품은 더욱 직설적으로 여성의 삶을 부각시켰다. 명성황후를 모신 ‘여성을 위한 진혼-열반’의 작품설명에 정종미는 “한국 여성들의 삶과 사랑은 마치 부처나 보살과 같다”고 썼다. “오랫동안 여성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고, 쓰라린 상처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품으로 그 분들을 위로하는 것뿐입니다.”
‘여성을 위한 진혼-열반’이 저승의 유토피아라면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허난설헌’은 여전히 어두운 현재 여성들의 삶을 형상화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두루 익히고 뛰어난 글재주를 지녔건만 이 작품에서 허난설헌은 우수리 헝겊과 글이 쓰여진 종이더미 위에 앉아 있다. 정종미는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허난설헌의 삶은 회한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전통색채기법을 되살리기 위한 연구도 하고 있는 정종미는 “전통의 색은 자연의 색”이라며 “유화나 아크릴화에서 나타나지 않는 독자적인 표현 기법을 선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도 ‘오색폭포’처럼 산수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자연성이 드러난다. 4월 12일까지.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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