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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울리히 벡이 본 세월호 참사와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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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울리히 벡이 본 세월호 참사와 한국의 미래

입력
2015.03.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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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성공한 한국사회 의도치 않은 위험사회 직면

산업성장의 나쁜 결과가 시민 일깨우는 역설에 주목

동아시아 위험관리 위한 '도시연합' 모델 실현 기대

위험사회 이론으로 세계의 명성을 얻은 울리히 벡 교수가 지난 정월 초하루에 돌연히 세상을 뜨자 세계 도처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다. 일본, 중국에서도 많은 매체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유럽에서는 안토니 기든스 등 저명한 지식인들이 모여 공개 추모행사를 열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의 흐름은 독특하다. 대부분의 경우, 지식인들이 학문적으로 그를 추모하지만, 한국에서는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면모를 보인다. 오는 1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추모행사가 좋은 보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도사를 하고 ‘4?16 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도 벡 교수를 추모한다. 더욱이나 추도 행사는 서울 봉은사 전 주지였던 명진 스님이 불교식으로 집전한다. 어쩌면 벡 교수의 이론이 가장 실천적이고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다.

왜 그런가? 세 가지 분명한 이유를 들겠다. 첫째, 벡 교수가 진단한 위험사회의 대중적 체감지수가 한국에서 매우 높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시민은 언제 어디서 어떤 대형사고가 터질지 불안하다. 최근의 동아시아 조사에 의하면 자연재난, 인적 재해, 경제?사회 위험 등에 대한 서울시민의 체감지수는 베이징이나 도쿄 시민보다 훨씬 높다.

둘째, 벡 교수는 새로운 미래를 제안한다. 제2근대, 성찰적 근대화가 좋은 보기다. 거대이론이 사라진 오늘날, 대안을 밝히지 못하는 석학들이 많다. 벡 교수는 이들과 확실히 구별된다. 바로 이 점이 동아시아의 미래에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성공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로 인해 전대미문의 위험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와 같은 정경유착의 산업성장, 1987년 체제와 같은 대중동원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우리의 희망일 수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구의 뒤를 계속 추종할 것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의 정체성이 살아 있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추구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중적 수준에서 분출하고 있다.

셋째, 위험관리에 관하여 벡 교수는 무엇보다 시민의 참여와 이에 기반한 적극적 신뢰를 강조한다. 한 보기로, 그는 지난해 7월 서울 공개강연을 통해 ‘해방적’ 파국의 의미를 ‘탈바꿈’으로 개념규정했다. 탈바꿈은 의지의 산물만이 아니다. 전진과 후퇴, 순기능과 역기능이 결합된 집합적 산물이다. 그는 특히 위험사회라는 산업성장의 ‘나쁜’ 결과가 시민 각성과 참여를 촉진시키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역설에 주목했다. 벡 교수는 이런 탈바꿈의 논리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슴이 찢겨진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제공했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비극이지만 이를 통해 분출되는 안전사회를 향한 대중의 분노와 열망, 에너지를 읽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옹호하고 정당화했다.

서구 문화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세상이지만, 동아시아에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불교, 유교, 도교 등 문화전통이 살아 있다. 이 전통에서 볼 때, 위험사회의 도래는 인간존중과 상호공존의 기본 도덕과 원칙을 무너뜨린 흉측한 괴물이 아닐 수 없다. 즉 대중적인 수준에서 위험사회에 대한 도전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와 영토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긴장을 보면, 위험사회가 단순히 한 국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가주의 전통이 아직도 강한 동아시아에는 평화를 위협하는 많은 위험들이 내재해 있다. 벡 교수는 이 점을 깊게 주시했다.

벡 교수는 중국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2008년 한국 첫 방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누었던 대화를 보면, 그의 입장이 색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근대화론을 피력했다. 중국에 대한 외부의 압박(미일동맹 등)이 심화하면 대결 국면이 불가피하지만, 희망컨대 중국이 내부의 정치력으로 발전한다면 중산층이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할 것이고 중국도 머지 않아 민주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는 달리 벡 교수는 중국은 위험사회를 관리하는 자신의 독특한 정치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어느 것이 맞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의 경험을 보면, 2013년 11월 중국 중앙정부는 위험관리 체제의 기본 틀을 고치고 전문가 및 주민대표의 참여를 신장시키되 국가 권위와 통치력의 지속을 담보하는 지역 단위의 사회 협치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새로운 실험들이 중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현실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체제지만 유교적 능력주의 정치가 강화되면서 자유민주주의보다 위험관리에 더 성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벡 교수가 강조했던 “조직화된 무책임”이 국가기구들 안에 얼마나 깊게 각인되었는가를 대중들이 고통 속에 체험했다. 중앙정부를 믿고 따르기보다 시민 위주의 가치 변화가 압도적으로 현저하다. 풀뿌리 시민의 참여 없이는 신뢰가 생길 수 없고 신뢰 없는 위험관리는 사상누각이라는 벡 교수의 진단이 정확하다.

이에 관해 시사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해 7월 서울시청에서 텔레비전 생중계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벡 교수의 공개대화가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벡 교수는 서울시가 시민참여에 기반한 위험 협치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고, 박 시장은 이것이 자신의 평소 생각과 일치함을 밝히면서 이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응답했다. 더 나아가 벡 교수는 동아시아 위험관리를 위한 ‘도시연합’ 모델을 제시했다. 요지인 즉, 서울시가 동아시아 위험관리를 위해 서울, 베이징, 도쿄 등을 잇는 도시협력에 앞장 서달라는 것이다. 벡 교수에 의하면 국가와는 달리 도시는 코스모폴리탄 변동의 주역이다. 박원순 시장은 이 제안도 수용했다.

벡 교수는 서울에서 새로운 실천의 꿈을 안게 되었다. 박원순 시장의 제안을 따라 자신의 꿈을 실천할 수도 있는 연구사업을 구상했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파리 워크숍에서 참여적 위험 협치를 위한 토론이 시작했다. 그 달 22일 필자는 베이징에서 한 시간에 걸쳐 벡 교수와 스카이프 화상 통화를 했는데, 그는 당시 서울 프로젝트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중 뜻밖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런 사연 때문에 런던 정치경제대학의 세바인 첼쇼우 교수는 17일 벡 교수의 꿈이 “서울 프로젝트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추도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돌이켜 보면, 벡 교수는 세계의 석학이었지만 진심으로 동아시아와 열린 대화를 원했다. 생각은 서구식으로 무장되었지만 마음은 한국과 서울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가득 찼다. 일본의 정치퇴행으로 동아시아의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그래도 서울은 벡 교수에게 새로운 영감과 의욕을 준 곳이었다.

아울러 벡 교수의 인생관, 인식론은 놀라울 만큼 불교와 궤를 같이 했다. 2008년 4월 서울 봉은사에서 그가 명진 스님과 나눈 대화를 보자. 명진 스님은 처음부터 지식에 대한 과신을 경계했다. 더 많은 것을 알려는 집착이 세상의 비참과 비극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이제는 모른다는 것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깊게 성찰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런 불교철학은 벡 교수가 항상 강조해온 위험의 뿌리에 있는 ‘모름’의 문제, 즉 불확실성의 명제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서 둘은 초면이었지만 동서양의 벽을 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갔다. 명진 스님과 벡 교수 부부는 같이 불당에 나가 법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스님은 벡 교수에게 “무애거사”(無碍居士)라는 호를 주었다. ‘한계 없는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아쉽기 한이 없지만 울리히 벡 교수는 우리에게 미완의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 이 유산을 잇는 하나의 길은 아마도 코스모폴리탄 변동 또는 그가 품은 코스모폴리탄 비전의 현실화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참여적 위험 협치와 안전사회를 향한 제2근대로 나갈 것 같다. 전자의 주역은 서구지만, 후자의 주역은 동아시아 특히 한국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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