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사색의 향기] 전원에 사는 즐거움

입력
2015.03.15 16:26
0 0

연일 이어지는 황사로 봄날이 달갑지 않기까지 하다. 게다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더욱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이럴 때 오장육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기록한 옛 글이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분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19세기 남공철(南公轍ㆍ1760~1740)이라는 문인이 살았다. 지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당대에는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쁘게 살다가 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을 위한 처방전을 제시했다. “푸른 산은 약 대신 쓸 수 있고 강물은 오장을 튼튼하게 한다(靑山可以當藥 湖水可以健脾).” 이 처방전대로 하고자 하여 남공철은 노년에 성남의 금토동 청계산 자락으로 물러나 살았다. “정자 앞뒤에 울타리를 치고 채마 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었으며, 땅을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어 기장과 벼를 심었다. 매화와 국화, 오동나무, 대나무 등을 대충 심어두고 꽃과 나뭇잎 사이로 지팡이를 끌고 배회하였다. 밤에 바위 평상 위에 앉아 동남쪽을 바라다보면 산이 트인 부분에 달빛이 일렁이는데 텅 비고 푸른 하늘에 파도가 멀리 쏟아지는 듯한 형세가 있다”고 자랑했다. 이러한 전원생활을 직접 누리지는 못하여도 옛 글을 읽으면 상상으로 즐길 수 있다. 이것이 옛 글을 읽는 즐거움이다.

그의 전원주택은 옥경산장(玉磬山莊)이라 했다. 청계산 자락 맑은 개울가에 세운 조그마한 집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고 그저 비바람만 가릴 수 있게 했다. 창에다 커튼을 치고 대자리 하나, 안석 하나를 두고서 기거하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가끔 산책을 나섰다. “비가 그쳐 약간 선선해질 때 난간에 기대 사방을 둘러본다. 산봉우리는 목욕이나 한 듯 허공에 파랗고 밝은 달은 동남쪽 트인 산 위에 떠올라 연못의 물과 어우러져 일렁거린다. 숲은 푸르고 하늘은 파랗다. 만물이 맑고 깨끗하다. 마침 시골 노인네들과 농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정치가 잘되는지 못 되는지, 어떤 인물이 좋고 나쁜지는 일체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런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옛 글을 읽으면서 상상으로 즐긴들 어떠랴!

여기에 더하여 남공철은 봄이 온 산에 비가 오려 한다는 뜻의 춘산욕우정(春山欲雨亭)을 청계산 자락에 두었다. 그곳에 붙인 시는 흑백사진처럼 희미한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밭두둑은 온통 짙푸른데, 들판의 개울물은 찰랑찰랑. 농부가 막 들밥을 내왔기에, 막걸리에 점심을 먹는다네(平疇一靑茁 野水出鬚鬚 田夫方午? 麥酒又飯兼)”라는 한 구절을 읽으면, 들밥으로 내어온 보리밥과 막걸리의 추억이 떠올라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좋지 아니한가?

남공철은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다. 청계산 자락의 푸른 산과 맑은 물을 늘 곁에 두고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곳의 사계절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도성 안의 집에다 걸어놓았다. 그 중 봄날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글로 표현한 것은 이러하다. “못가의 석상(石床)에 앉아서 향을 사르고 책을 펼친다. 매화와 살구꽃, 철쭉꽃이 불이 난 듯 선홍빛을 띠다가 가끔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려 한다. 금빛 은빛 나비가 옷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남공철은 그림으로 전원생활의 추억을 도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리도 그의 글을 통해 자연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남공철은 전원생활을 통해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하면서도 능력이나 외모가 모자란다 하여 차별해서는 아니 된다는 삶의 공부도 함께 하였다. 그가 청계산 자락에 만든 동원(東園)이라는 동산은,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지는 않았기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와 잡목 한 그루만 덩그렇게 저절로 자라났다. 봄이 되자 분홍빛 복숭아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하인이 복숭아나무는 열심히 손질을 하였지만 그 곁의 잡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남공철은 하늘이 세상 만물에 비와 이슬을 고루 내리고 군자는 사람을 두루 사랑하는 법이라 했다. 또 태산(泰山)의 언덕에는 용도가 많은 소나무와 쓸 데가 없는 가죽나무가 함께 자라고 달인(達人)의 문하에는 잘난 자와 못난 자가 함께 있는 법이라 했다. 자신의 동산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행(幸)과 불행(不幸)의 차등이 있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 했다. 전원생활에서 깨달은 삶의 공부도 배울 만하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