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남편은 큰아이에게는 수선화를, 작은아이에게는 히아신스를 선물해주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놓고 분무기로 물을 주며 신나했다. 좀 더 큰 봉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슬쩍 들여다보니 춘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내게 주려는 것일까. 비닐봉지째 현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데리고 천변에 나서기로 했다. 차례대로 아이들 옷을 입히는데 남편이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 좋아하시는 춘란 갖다 드려야겠다, 고 했다. 그래서 차로 15분이면 되는 거리를 애들 넷을 데리고 산책 삼아 걸어갔다. 한 시간 반쯤 걸렸다. 아이들은 걷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즐거워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이들은 돌멩이 풀 나뭇잎 같은 것을 주우며 손과 옷을 더럽혔다. 놀이터에서 하루살이를 만나 반가워했다. 그네도 밀어주고 시소도 함께 타고 단란한 가족 코스프레를 마치고 외가에 도착했다.
“봄은 참꽃을 기르고 나는 봄을 늘리네”(문태준 ‘장춘’)를 읽으며 조용히 봄을 만끽하고 싶지만 내게는 아직 모든 계절이 너무 소란스럽고 힘겹다. 내가 다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남편이 있으니 견딜만하다고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아버지가 춘란을 좋아하시는 것에 무관심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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