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여수 출신의 40대 남자, 아이큐 180의 17세 천재 소년, 이 소년의 쌍둥이 여동생, 7세 여자 어린이…. 한 사람이 이 같이 많은 인격을 갖는 게 가능할까. 12일 인기리에 종영된 지상파 TV드라마 ‘킬미, 힐미’의 주인공 차도현은 모두 7개의 인격을 갖고 있다. 흔히 다중인격장애라고 부르는 해리정체성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다.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인격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질환이다.
‘해리(解離)’의 사전적 의미는 풀려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의식이 몸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충격적 사건의 피해자가 그 순간 경험에 대한 기억,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듯 말이다. 방어기제로써 인격을 분리하는 것이다. 해리정체성장애는 평균 5~10개의 인격을 갖는다고 한다. 반복해서 해리 방식에 의존하다 보면 다수의 인격체가 생기는 것이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에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이 없지 않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형사는 “수년 전 존속 살해를 저지른 20대 청년이 체포된 뒤 손에 피가 묻어 있는 데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다”며 “‘누군가가 나에게 들어와 한 일’이라고 주장해 크게 놀라 정신감정을 의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청년은 밴드 일로 가족과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해리정체성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각각의 인격은 서로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인격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현실감각을 상실하고, 망상에 시달리는 조현증과 달리 현실인지나 감각은 정상적이다.
그러나 해리정체성장애 환자는 국내에 거의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정신과 의사들도 그런 환자 케이스를 접하지 못했다고 했다. 외국의 경우 영국에서는 50대 여성 킴 노블이 100개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보고됐다. 24개의 인격을 가진 미국의 빌리 밀리건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그는 고교를 중퇴했는데 수학, 물리학, 의학에 정통한 인격, 크로아티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격, 전자제품에 전문가인 인격 등으로 변했다.
해리정체성장애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와 폭력을 겪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해리정체성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우울증, 자살 충동, 수면장애, 약물 남용, 기억상실증, 유체이탈, 자기거부, 폭력 경향 등 증세를 보인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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