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임금 인상하기 어렵다면
중기 자금난 완화 노력해야"
재계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최저임금 인상엔 반대 표명
정부-재계 갈등 깊어질 수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대기업들이 당장 임금인상이 어렵다면 협력업체에 적정한 대가라도 지급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최근 연이은 임금인상 요구에도 재계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자, 불황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대기업이 나서줄 것을 촉구한 것이다. 한국은행도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한 만큼 이제는 돈을 움켜쥐고 있는 대기업이 돈을 풀어 가계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갈수록 강해지는 정부의 압박에 재계의 불만도 점점 높아지는 모습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 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해 소비가 회복될 수 있게 힘을 모아달라”며 “특히 대기업의 경우 협력업체에 적정한 대가 지급 등을 통해 자금이 원활하게 흘러 들어 가도록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조찬강연에서 임금인상의 필요성을 거론한 이후 이달에만 4번째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특히 재계가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임금인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날은 최소한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이라도 늘려달라는 주문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정부 측은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가능성에 대해 재계의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브리핑에서 “노사가 같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경상임금과 소득재분배 기능을 반영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원칙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납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의 반응은 이날도 미지근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의 정책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우리나라는 임금이 한번 오르면 잘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진행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는 기업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여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와 소득구조를 고려해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갖고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선을 그었다.
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도 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고용과 임금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어려워지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며 “부총리도 앞으로 과제를 말하면서 청년 취업을 가장 먼저 얘기하는 등 고용을 먼저 거론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협력업체 대가 지급 확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역시 무리한 요구라며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따라 향후 임금 등 가계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기업 한 임원은 “최저임금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기업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임금 인상 등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방향성이 옳다고 과정이나 절차까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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