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후 첫 담화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했다. 이 총리는 “국정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고질적 부정부패와 흐트러진 국가 기강”이라면서 “정부는 모든 역량과 권한, 수단을 동원해 부패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척결해야 할 부정부패 사례로 방위사업 비리, 해외 자원개발 관련 배임과 부실투자, 대기업 비자금 조성ㆍ횡령, 공적 문서 유출 등 4가지를 제시했다.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한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우리 사회의 부패가 여전하고 김영란법 제정에서 보듯 투명사회로 가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도 크다. 하지만 이런 당위론에도 불구하고 이 총리 담화는 여러 측면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대혁신을 최대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공언한 바 있다. 이 총리가 부패 척결 대상으로 제시한 영역도 이미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 포장만 씌운 것 아니냐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 살만하다.
가령 해외자원 개발 수사만 해도 그렇다. 시민단체들이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공기업과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게 지난해 11월이다. 감사원도 자원개발 특별감사 결과 석유공사에 대한 비리가 드러나자 지난 1월 검찰에 구체적인 혐의와 함께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와 조사부에 배당하는 등 수사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던 검찰이 이 총리 담화 발표와 동시에 자원외교 관련 사건을 특수부에 재배당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수 개월 동안 본체만체 하다 갑자기 수사에 고삐를 죈다고 하니까 전 정권에 대한 표적사정이니 하는 구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다. 부정부패와 직접 연관 짓기 어려운 ‘공적 문서 유출’이 들어간 것도 석연치 않다. 지난해 말 불거진 이른바 ‘정윤회 사건’을 염두에 둔 공무원 겁주기로 보일 여지가 있다. 임기 후반기를 앞두고 공직자 군기를 잡아 레임덕을 예방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부정부패를 뿌리뽑는데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이전 정권의 일이라도 비리가 있으면 마땅히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부패척결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 받아서는 안 된다. 이번 ‘부패와의 전쟁’이 혹시라도 지지율 회복을 목적으로 한 이벤트로 비치면 쓸데없는 억측과 함께 명분도, 동력도 훼손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부패 척결과 사정은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돼야 하는데 이처럼 요란하게 캠페인 하듯이 해서 무슨 성과를 낼 수 있을 지가 무엇보다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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